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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김미정에게

2021년 7월 2일은 그녀와 내가 결혼한 지 27년이 되는 날이었다. 별다른 이벤트 없이 둘이 “진짜 오래도 같이 살았다”는 말로 서로를 위로하면서 그날이 그렇게 지나갔다. 20대 초반 첫눈에 반해 양가 부모님의 애를 태워가며 아슬아슬하게 연애를 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불같은 사랑을 했다. 50대에 들어 그 당시를 회상하면 정말 아찔하다. 그렇게 철부지 시절을 거쳐 결혼에 골인했고 27년이 흘렀다. 지금도 가끔 지인들에게 술자리에서 결혼생활을 이렇게 오래 할 수 있는 원동력은 연애 시절 불같은 사랑이었다고 자랑하곤 한다.

27년간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만, 우리 두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첫 번째 사건은 출산이었다. 당시 우리는 결혼을 하고 프랑스에서 유학 중이었다. 주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말 대책이 없었던 것이 프랑스 건강보험도 없이 덜컥 임신하다 보니 출산비용을 자비로 부담해야 할 처지였다. 어렸던 우리는 ‘어떻게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종합병원에서 첫 아이를 출산했다. 다행히 돈 없는 학생이라고 하니 그냥 집으로 가라고 했다. 정말 다행이었다. 그러나 정말 힘든 일은 집에 오면서부터였다. 단둘이서 산후조리와 육아를 해야 했다. 집사람은 산후조리로 거의 자리에 누워 있었고 집안일과 아이를 돌보는 일은 전부 내 몫이었다. 밤잠을 못 자는 것은 다반사였고 밥 먹을 시간도 없었다. 집사람은 수유로 특히 잘 먹어야 하니 나는 한국에서 가지고 온 미역으로 국을 끓이고 밥을 하고 반찬을 만들고 우는 아이를 돌봤다. 정말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역경이었다. 우리에게 쉽지 않은 하루하루였지만 젊으니까 견딜 수 있었다.

우리 인생의 두 번째 도전은 돈이었다. 부모님을 잘 만나 프랑스로 유학까지 왔지만 양가 모두 부잣집은 아니어서 금전적으로 매우 아껴 살아야 했다. 어떤 해인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집에 치약과 비누가 떨어졌는데 살 돈이 없었다. 쌀도 없어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를 탈탈 털어가며 살아가던 때였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불현듯 로또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집에 있는 모든 동전을 끌어모았다. 로또 3줄을 찍을 수 있는 금액이 모였다. 이 돈이면 치약은 살 수 있었지만 과감하게 로또에 투자했다. 다행히 3만 원 정도가 당첨됐다. 집사람과 나는 환호성을 질렀고 돈을 찾아 치약, 비누, 쌀 등을 샀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이 틀리지 않는다는 것을 직접 체험했다.

이런 시시콜콜한 일들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부부는 같이 생활하면서 동지가 돼 간다는 것이다. 인생의 역경을 견뎌내며 불같은 사랑은 신뢰로 발전하고 부부는 일심동체가 돼간다. 그녀가 기쁘면 나도 기쁘고, 그녀가 속상하면 나도 속상하다. 그녀는 내 인생의 전부다. 여보! 나하고 살아줘서 고마워. 그리고 세상 누구보다 사랑해.

남편 유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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