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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 꽃잎을 보며 밥알을 떠올리는 것, 이팝나무 꽃잎을 보며 밥풀을 떠올리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눈에 보이는 새로운 것을 자신이 이전에 알고 있는 가장 익숙한 것에 비추어 받아들이는 것이니 말이다. 물론 배가 몹시 고픈 경험 때문에 쌀알 하나하나를 유심히 지켜본 사람일수록 더 그럴 법하다. 이런 이들은 길을 가다 노란 심에 하얀 테두리가 있는 꽃을 보면 자연스럽게 계란꽃이란 이름을 붙인다.

무슨 꽃일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이 꽃의 정식 명칭은 개망초꽃이다. 식물 이름에 ‘개’가 붙으면 아무래도 격이 떨어지지만 망초보다 개망초가 훨씬 더 익숙하니 굳이 이름 때문에 낮춰볼 이유는 없다. 메밀꽃만큼이나 흐드러지게 피는 꽃,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흰 물결이 일렁이듯 하는 이 꽃은 누구에게나 친숙한 꽃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이름도 정겨운 계란꽃이다.

그런데 어떤 이는 계란꽃이 아닌 달걀꽃이어야 한다고 우긴다. ‘계란(鷄卵)’은 한자어니 순화된 고유어 ‘달걀’을 써야 한다는 논리와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방송에서는 출연자가 계란이라고 말해도 자막엔 굳이 ‘달걀’로 고쳐서 쓰기도 한다. 그런데 왜 ‘닭알’이 아니라 ‘달걀’일까? ‘닭의알’이 ‘달기알’로 바뀌고 이것이 ‘달걀’로 줄어든 것이니 그 과정이 좀 복잡하다.

‘눈치코치 없이 아무 데서나 피는 게 아니라 개망초꽃은 사람의 눈길이 닿아야 핀다’. 시인 안도현은 ‘개망초꽃’에서 이렇게 읊었다. 계란이 한자어이고 달걀이 고유어이긴 하지만 눈치코치 없이 아무 데서나 국어순화를 외치는 이들이 있다. 고유어를 쓰는 것이 좋겠지만 널리 쓰이는 한자어를 굳이 잘못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다. 사람들의 입길에 널리 오른 말이라면 계란도 우리말이다. 길가에 흔히 핀 개망초꽃은 고유식물로 보이지만 사실 북아메리카 원산의 귀화식물이다. 그것을 ‘에그 플라워’라고 하지 않는 한 계란꽃도, 달걀꽃도 우리 꽃이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