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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나 서울대 명예교수 前 국립중앙박물관장

주문 제작 수준에 있던 미술품
17세기 네덜란드서 ‘화랑 거래’

미술가들은 원하는 그림 그리고
수집가들은 화랑서 선택하게 돼

1980년대 이후 세계경제 호황에
투자·투기 목적의 경제 영역으로

한때 세계 미술시장의 큰손이 일본인이던 때가 있었다. 바로 일본의 버블 경제가 피크였던 1990년 전후였다. 1987년 런던의 소더비 경매에서 일본의 야스다(安田)화재보험은 반 고흐의 ‘해바라기’를 3900만 달러에 구입했고, 1990년에는 일본의 사업가 사이토 료에이(齊藤了英)가 반 고흐의 ‘가셰 박사의 초상’을 8250만 달러에 사서 화제가 됐다. 당시로써는 경매 사상 최고가였다. 작품이 손에 들어오자 사이토는 자신이 죽으면 ‘가셰 박사의 초상’과 같이 묻히겠다고 말했다. 물론 농담이었겠지만, 이 말은 그러지 않아도 일본인에게 작품이 넘어간 것이 못마땅했던 서구 언론에 크게 보도되면서 논란이 됐다. 결국 ‘가셰 박사의 초상’은 1996년 사이토가 고인이 된 뒤 다른 수집가에게 팔렸고, 얼마 후 또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경매의 어마어마한 가격들은 우리를 놀라게 하지만, 높은 가격에 팔렸다고 판매액이 다 작가에게 가는 것은 아니다. 몇 년 전에 어느 중견 작가의 작품이 홍콩 경매에서 7억 원에 팔려 정말 잘됐다고 했더니,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 작품은 이미 그전에 훨씬 싼 가격으로 화랑에서 가져갔기 때문에 돈을 번 곳은 화랑이라는 것이었다.

20세기 초만 해도 미술품 수집가들은 작품을 사서 집에 걸어 놓고 감상하다가 나중에 미술관에 기부하곤 했지만, 1980년대 이후 세계 경제가 호황을 누리면서 미술품은 투자와 투기를 목적으로 하는 경제 영역이 됐다. 미술시장은 과열되고 이른바 스타 작가들의 작품은 부르는 게 값일 만큼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미술품 가격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가격은 이전의 경매가격, 대중 매체, 신문, 잡지, 인터뷰 등 여러 요소가 합쳐져 만들어진다. 또, 소문도 중요하다. 한때 동성애자인 영국의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1937년생)의 파트너가 에이즈로 숨지자 호크니도 곧 죽을지 모른다는 소문 때문에 그의 작품 가격이 뛰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건재하다.

주식처럼 투자를 목적으로 미술품을 산 사람들도 낭패를 겪을 수 있다. 일단 사두었다 가격이 올라가면 다시 팔아 수익을 올릴 수도 있지만, 시장이 폭락하면 훨씬 싸게 되팔아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스타 작가라 할지라도 태작(태作·졸작)이나 위작의 가능성이 있을 수 있으므로 작품을 잘 살펴야 한다. 미술시장의 동향은 미술가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경제적인 유혹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기보다는 잘 팔리는 작품만 계속 제작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미술시장이 열기를 띠고 작품 가격이 계속 오르면 자체 예산으로 구입하기 어려운 미술관은 타격을 받는다.

미술품이 주문 제작에서 벗어나 화랑과 같은 미술시장을 통해 처음 거래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네덜란드에서였다. 네덜란드에서는 중산층이 두터웠는데 이들은 그렇게 비싸지 않은 소품을 사서 집에 걸었다. 주로 풍경화, 정물화, 초상화, 일상생활을 그린 작품들이 잘 팔렸는데 그림을 이해하는 데에 특별한 지식이 필요하지 않고, 쉽게 감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 값도 전신상은 반신상의 2배, 인물 둘을 그리면 하나를 그린 그림의 2배로 받는 등 나름대로 논리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 네덜란드 이외의 나라에서는 주문 제작이 대부분이었다. 유럽 각국 간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국제적인 인기를 누리는 미술가가 많아지면서 이들 유명 미술가는 조수를 많이 쓰게 됐는데, 이는 오늘날 미술품의 진위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이 됐다. 국제적으로 이름을 날리던 페테르 파울 루벤스는 주문이 밀려 많은 조수가 작업하는 공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마치 공장과 같은 그의 작업장은 루벤스가 여행 중이더라도 계속 돌아갔다. 그 때문에 오늘날 유럽의 미술관에서 루벤스의 작품들을 보면 이 많은 대작을 어떻게 전부 그렸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초기 작품들은 대부분 루벤스가 그렸지만, 후기로 갈수록 그는 사회적인 활동에 바빠 조수들이 대부분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실제 아이디어나 구성은 모두 그에게서 나왔고, 그가 마지막에 터치를 조금만 해도 루벤스 특유의 분위기가 살아났다.

화랑 거래가 활발해지는 19세기에 오면 미술가들은 주문에서 해방돼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고 수집가들은 화랑에서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이미 이때 그림 값은 고가였다. 당시 선호하던 그림은 정확한 드로잉과 사실적인 묘사, 잘 다듬어진 화면의 아카데믹한 작품들이었다. 오늘날에는 거의 잊혔지만 당시 가장 유명했던 화가 중 한 사람인 윌리엄 부그로는 작품 한 점이 10만 프랑에 달했는데, 광부의 한 달 월급이 1000프랑이었다고 한다.

글로벌 사회가 되면서 미술시장도 국제적인 비즈니스가 됐다. 한때 세계 미술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은 인상주의 회화였지만, 최근에는 현대미술 쪽으로 옮겨 가고 있다. 더 이상 유럽이나 미국 미술 중심에 머물지 않고, 아시아·아랍·아프리카 출신의 미술가들도 각종 아트 페어나 경매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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