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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범 산업부 차장

더불어민주당이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한 ‘탄소 중립 기본법 제정안’을 두고 오히려 “탄소 중립을 죽이는 법이 될 것”이라는 원성이 경제계 안팎에서 쏟아지고 있다. 민주당은 해당 법안 제8조에 ‘203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35% 이상으로 감축해야 한다’고 못 박아 둔 상황이다. 정부에 대해서는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40% 이상 감축된 수준으로 계획을 제출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민주당은 언론중재법 개정을 둘러싼 사회적 혼란을 틈타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2030년 감축 목표를 2017년 대비 24.4%로 정한 지 불과 2년도 안 돼 의견 수렴 절차를 무시한 채 멋대로 뜯어고친 셈이다.

집권 여당의 이런 행태는 국가 체제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불러올 것이다. 특히 ‘지속 가능한 탄소 중립 경제’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게 될 것이다. 한국자원경제학회장을 맡은 박호정 고려대 생명과학대학 교수는 “온실가스 감축 역량은 자본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국내 최초의 석유화학 회사인 SK지오센트릭(옛 SK종합화학)의 도전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 회사는 2025년까지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이른바 ‘도시 유전’ 사업 분야에서 세계 최대 회사로 도약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적어도 5조 원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 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 약 2000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고 직전 해에는 약 4600억 원의 순이익을 기록한 이 회사가 영업 정상화를 전제로 앞으로 10년간 벌어야 할 이문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얘기다. 자본 잠식 상태라면 꿈도 꾸기 힘든 시도다.

미국·유럽연합(EU) 등은 이미 이를 잘 알고 있다. 대표적인 온실가스 배출 업종인 철강 산업은 고도의 자본 집약 산업이다. 한번 설비 투자를 하면 30∼40년을 사용해야 한다. EU가 ‘탄소 국경세 도입’ 등을 언급하면서 올해 들어 ‘탄소 중립’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것도 이미 설비 교체 시기를 맞는 자국 산업 여건을 고려한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하면서 기준으로 삼는 연도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2005년, EU는 1990년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8년이다. 기준연도를 더 예전으로 잡을수록 감축 효과는 드라마틱하게 커진다. 제대로 된 논의도 없이 2018년을 기준연도로 삼은 것이 과연 공정한 것인지 따져 볼 대목이다. 박 교수의 분석을 빌리면 우리나라가 미국처럼 2005년을 기준으로 하면 감축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고, EU처럼 1990년을 기준으로 하면 오히려 배출이 허용된다고 한다.

물론 감축 시기를 미루면 미래 세대에 부담만 떠넘기게 된다.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역으로 산업 여건을 무시한 채 거위의 배를 가른다면 미래 세대에 재앙을 떠넘기게 될 것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진영 결집을 위한 선명성 용도로 느닷없이 탄소 중립 기본법 제정을 밀어붙인 여권의 행태를 보면 앞으로 벌어질 일이 자명해 보인다. EU가 탄소 중립 목표 설정을 위해 왜 2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공론화 과정을 거쳤는지를 지금이라도 돌아봐야 할 것이다. 거위가 죽어버리면 기회는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