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정창권 고려대 문화창의학부 교수가 18일 서울 문화일보에서 ‘조선의 살림하는 남자들’의 기획의도를 설명하고 있다. 김호웅 기자

■ 문화일보·예스24 - 국민서평프로젝트 ‘읽고쓰는 기쁨’

8월 선정도서 ‘조선의 살림하는 남자들’ 정창권 교수

‘현모양처’는 일제시대교육 잔재
산업화 과정서 가장-주부 분리

‘역사책=과거의 기록’ 치부 말고
‘내 삶’ 투영하면 좋은 서평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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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엔 요리와 장보기, 자녀 교육과 재산 증식 등 살림을 함께하고, 아내의 사회활동을 지원하는 ‘외조하는 남성’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집안일=여성의 몫’이라는 고정관념이 생긴 건 일제강점기와 산업화 이후입니다.”

‘조선의 살림하는 남자들’(돌베개)은 가부장제가 확립된 조선 시대, 남성들이 집안일엔 뒷짐만 졌다는 통념을 깨며 화제를 낳고 있다. 문화일보와 예스24가 함께하는 ‘국민 서평 프로젝트-읽고 쓰는 기쁨’의 이번 달 서평 도서인 이 책은 일기와 편지, 개인 문집 등 실생활 기록을 토대로 ‘조선 살림남’의 흔적을 쫓는다. 저자 정창권 고려대 문화창의학부 교수는 고전산문 전공자로 ‘천 리 밖에서 나는 죽고 그대는 살아서’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 등을 집필했다. 지난 18일 서울 문화일보에서 정 교수를 만났다.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기존 조선생활사 연구는 남성을 가부장제의 ‘수혜자’로 규정한다. 유교와 성리학이 뿌리내리며 ‘남존여비’ 사상을 바탕으로 한 가부장제가 정착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러 문헌에서 당시 남성들이 살림에 쏟아부은 ‘노고’를 확인할 수 있었다. 성리학의 기초를 닦은 퇴계 이황은 지적장애를 가진 아내를 대신해 재산 증식, 노비 관리 같은 바깥 살림은 물론 요리와 의복 마련 등 안살림을 도맡았다. 16세기 유학자 이문건은 우리나라 최초의 육아일기인 ‘양아록’을 남길 만큼 손자 교육에 신경 썼다. 집안일에 남녀 경계가 없었던 셈이다. ‘살림남’의 역사적 기원을 재평가하고 싶었다.”

―책머리에 “남은 자료의 한계 탓에 주로 양반가를 다뤘다”고 밝혔다. 많게는 150명 안팎이 모여 산 양반가의 일상을 일반화할 수 있나.

“일부 예외적인 기록을 갖고 확대해석했다는 반론이 있다.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에게 ‘조선 남성들이 살림을 하지 않았다’는 근거는 무엇이냐고 되묻고 싶다. 양반가 위주이긴 하지만 ‘살림 참여’는 중산층과 천민 계층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례로 하급 무관 나신걸은 지방 발령을 받고 급하게 아내에게 편지를 남겼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이 편지에서 그는 노비 관리와 세금납부 방법을 세세히 알려주며 집안일을 ‘인수인계’했다. 또 유학자 유희춘의 ‘미암일기’엔 마부인 대공이 노비로 팔려가자 아내가 다른 남자와 도망간 사연이 나온다. 남편이 양반집에 숙식하게 돼 집안일이 안 돌아가니 뒤도 안 돌아보고 ‘이혼’한 것이다.”

―‘살림 소홀’이 가정불화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는 주장도 흥미롭다.

“당시 남편이 집안일을 등한시한 것을 ‘안주인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반발로 받아들였다. 남성들의 성(性)생활이 요즘처럼 문제가 되지 않던 시대였기에 ‘첩’과 놀아나는 것보다 훨씬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조선은 가부장제 사회’라는 인식이 잘못된 것인가.

“그건 아니다. 다만 ‘조선의 가부장제’는 안방(여성)과 사랑채(남성)가 균등한 힘을 지닌 수평적 제도였다. 남존여비 사상이 강화된 조선 후기에도 ‘집안에서 여성이 갖는 지위’엔 큰 변화가 없었다.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구분하는 ‘수직적 가부장제’는 일제강점기 이후 굳어졌다.”

―‘가부장제’에서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가 근대화의 산물이란 뜻인가.

“그렇다. 일제에 의해 근대화를 겪으며 집안보다 사회의 비중이 커졌고 ‘집안일은 여자, 바깥활동은 남성’이라는 구분이 생겼다. 이런 흐름은 1937년 중일전쟁을 계기로 더욱 강화됐다. 전쟁에 투입되는 남성을 ‘사회적·국가적 인간’으로 환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반면 일제의 식민지 여성 교육은 ‘부덕(婦德)의 함양을 통한 현모양처 양성’에 초점을 맞췄다. 현모양처는 일제가 의도적으로 식민지 사회에 이식한 왜곡된 여성상이다.”

―1970년대 이후 산업화 과정에선 성 역할 구분이 어떻게 이뤄졌나.

“자본주의 모델이 정착하며 사회와 가정은 완전히 분리되고, 성별 노동분업도 강화됐다. 남자는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이, 여자는 가사 노동을 전담하는 ‘주부’가 됐다. 바깥일과 살림을 균등하게 짊어지는 것은, 없던 길을 새로 내는 게 아니라 ‘살림남’이 보편적이었던 ‘남녀공존’의 역사를 복원하는 것이다.”

―서평 프로젝트에 참여할 독자들에게 ‘팁’을 준다면.

“역사책이지만 ‘과거의 기록’으로 치부하지 않고, 현재 ‘나의 삶’을 투영하면 좋겠다. ‘이해’와 ‘관심’을 키워드로 함께 행복해지는 길을 고민한다면 훌륭한 서평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나윤석 기자


‘국민 서평 프로젝트’ 3차 공모 서평 대상 책은 ‘조선의 살림하는 남자들’을 비롯해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디플롯), ‘밝은 밤’(문학동네), ‘욕구들’(북하우스)이다. 1600∼2000자 분량으로 오는 27일까지 제출하면 된다. 자세한 사항은 예스24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