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정재호, 위로, 53×41㎝, 한지에 아크릴, 2017

‘거미란 놈이 흉한 심보로 …그물을 쳐 놓았다…노란 날개를 파득거려도 파득거려도 나비는 자꾸 감기우기만 한다…사나이는 긴 한숨을 쉬었다… 때를 잃고 병을 얻은 이 사나이를 위로할 말이 거미줄을 헝클어 버리는 것밖에 위로의 말이 없었다.’(윤동주, ‘위로’에서)

자고 일어나면 또 생겨나는 거미줄, 그놈들을 걷어낼 때 그 시가 생각나곤 한다. 병원 요양 중 거미줄에 걸린 나비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는 병약한 동료 환자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위로가 거미줄을 걷어내는 일.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이 누군가를 위로한다는 것은 가히 범속을 넘어섬이다.

그 시를 읽은 정재호 화가는 나비의 자리에 만년필을 그려 넣었다. 민족의 암울한 현실, 영어(囹圄)에 갇힌 자신의 몸과 영혼, 그 처절한 고난 속에서 문학이 연단되고 있음을 능히 느낄 수 있다. 그토록 염원했던 조국의 광복 직전,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 순국시인의 숭고한 문학혼이 엿보인다. 몸은 갇혔어도 우화등선(羽化登仙)을 이룬 스물여덟, 그 나이 나는 무엇이었던가.

이재언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