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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구재영

“너희를 다 키우고 보니 아빠가 어느새 60세가 넘었더라. 아빠도 이제 마음 놓고 하고 싶은 거 즐기면서 살고 싶다.”

햇살 따스한 어느 날, 산책 도중 아빠가 하신 말씀이다. 아빠는 지금껏 네 명의 여자를 뒷바라지하셨다. 나와 동생, 엄마, 그리고 어릴 때부터 함께 지내다가 지난해 99세로 돌아가신 할머니까지…. 약 30년 동안 새벽 5시에 기상해 운동하고, 일터로 향하는 철저한 자기관리의 삶을 사셨다.

아빠는 비록 우리 집이 부유하지 않았음에도 “돈은 나중에도 벌 수 있지만, 아이들과의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며 엄마가 딸들과 함께 집에 머물도록 했다. 본인이 더 열심히 발로 뛰면 된다는 게 이유였다.

그렇게 시간이 훌쩍 지나 나는 어느덧 직장생활 5년 차가 됐다. 대학에 다닐 때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었지만, 아빠는 “아르바이트할 시간에 책이나 더 읽으면서 공부하고, 공부하기 싫으면 차라리 놀아라”라고 하시며 등록금과 용돈을 주셨다.

아빠는 시골에서 자라며, 하고 싶어도 농사일을 돕느라 할 수 없었던 공부가 한으로 남아 자식들만큼은 편히 공부시키고 싶으셨다고 한다.

나와 동생이 어느 정도 크자 아빠는 “사실 어릴 때부터 가수가 되고 싶었다. 그동안 여유가 없어 잊고 살았는데, 이제는 한번 해 보고 싶다”고 하셨다. 가슴 속에만 간직해오던 꿈을 실천하기로 결심하신 것이다.

그 후 아빠는 2014년에 노래 ‘맨발의 청춘’ 발매를 통해 꿈을 이루셨다. ‘기댈 곳 없는 세상에 부평초처럼 떠다녀도 마음이 가난했거나 비겁하지 않았다’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아빠가 무일푼으로 서울에 올라와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2017년에는 2번째 노래 ‘덕분에’가 세상에 나왔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덕분에 웃고 삽니다’로 시작하는 긍정적인 노래를 부르면서 그동안 힘이 돼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아빠의 열정은 아주 뜨거웠다. 방송국을 찾아 PD와 작가에게 인사를 건네고, 자리에 없을 때는 책상에 앨범을 놓고 오기도 하셨다. 그러한 노력으로 무대에 오르는 횟수가 점점 늘었다. 공연이 있었던 날에는 꼭 집에 돌아와 공연 영상을 보여주시며 “한번 들어볼래? 목소리 괜찮아? 잘했어?” 하고 묻곤 하셨다.

코로나19로 공연이 줄면서 아빠의 노래를 듣는 횟수도 줄었지만, 위기 상황에서도 아빠는 코로나19로 고생하는 의료진을 위한 노래를 부르고 싶다며 며칠을 고민하시더니 덕분에를 개사한 ‘덕분에 코로나 송’을 발표하셨다. 요즘에는 아빠가 엄마를 처음 만났던 날을 주제로 노래를 만들고 계신다.

어느 날은 아빠께 이렇게 여쭤봤다. “아빠, 유명해지지 않아도 계속 노래하고 싶어요?” 아빠는 이렇게 답하셨다. “아빠는 이미 국민 가수야. 아빠를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꼭 유명해지지 않으면 어떠냐. 나중에 아빠가 죽었을 때 우리 딸들이 어디서나 쉽게 아빠 목소리를 찾아 들으면서 아빠 생각하면 그걸로 됐지. 아빠 기일에 슬퍼하지 말고 음악 틀어놓고 노래 불러줘라.”

모두 코로나19 종식 이후의 바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의 바람은 아빠가 노래할 수 있는 무대가 많아지는 것이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행복하게 웃고 있는 관객들 사이에서 아빠를 바라볼 날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 아빠 사랑합니다.

딸 구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