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조원 美공장 건립 확정못해
“3년내 M&A” 추진도 진전없어

“국내 반도체 산업 경쟁력 위해
이재용 부회장 사면 이뤄져야”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대만 TSMC, 미국 인텔의 경쟁이 격화하고 있다.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1위인 TSMC가 시장 수성을 위해, 파운드리 시장 재진출을 선언한 인텔은 시장 점유율 1위를 목표로 역대급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등 잰걸음을 하고 있는 반면, 삼성전자는 수개월째 반도체 투자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총수 부재에 따른 의사 결정이 더 지체될 경우 현재의 메모리 반도체 1위 자리는 물론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1위를 달성하겠다는 ‘반도체 비전 2030’ 실현도 어려워질 전망이다.

4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펫 겔싱어 인텔 CEO는 지난달 26일 열린 온라인 기술 로드맵 발표 행사에서 “올해 7나노(㎚·10억 분의 1m) 반도체를 선보인 뒤 2023년 3나노, 2024년 2나노, 2025년 1.8나노 반도체를 생산하겠다”며 2025년까지 파운드리 시장 선두 자리를 되찾겠다고 공언했다. 파운드리 업체 중 2나노대 이하를 언급한 것은 인텔이 처음이다. 삼성과 TSMC는 현재 5나노 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3나노대에서 기술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업계는 후발 주자인 인텔이 기술력 면에서 아직은 한 걸음 뒤처져 있는 것으로 평가했지만, 잠재력 등을 고려했을 때 장기적으로는 삼성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앞서 인텔은 미국 애리조나주에 파운드리 공장 두 곳을 신설하는 데 200억 달러(약 23조 원) 이상의 투자 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200억 달러 규모의 유럽 내 신규 공장 논의도 진행 중이라고 밝히는 등 파운드리 시장에 사활을 걸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지금 우려되는 것은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이 반도체를 전략 산업으로 지정해 과감한 육성책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라며 “미국 정부가 반도체 주도권 확보를 위해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 경우 인텔은 유리해지는 반면 삼성은 고객을 잠식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TSMC도 시장 1위 자리를 삼성에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가 크다. TSMC는 최근 주요 고객사가 있는 독일과 일본에 공장 신설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4월에는 오는 2024년까지 파운드리 설비에 총 1280억 달러(148조 원)를 투자하겠다고 했고, 5월에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반도체 생산공장 5개 추가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171조 원을 투자해 파운드리 1위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세웠던 삼성전자는 대만과 미국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당장 지난 5월 발표한 170억 달러(19조 원) 규모의 미국 파운드리 제2 공장 건설 계획을 확정하지 못했다. 올해 초 “3년 이내에 유의미한 인수·합병(M&A)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또한 별다른 진전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2016년 미국 하만(Harman) 인수 이후 대규모 M&A에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총수 부재에 따른 투자 실기(失機)가 국내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크게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업계 전문가는 “대규모 투자는 투자 시점·규모·장소·조건 등에 따라 사업 성패가 크게 달라지는 만큼 오너 경영자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며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이재용 부회장 사면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주 기자 sj@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