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모차르트’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EBS). 하지만 나쁜 개를 만드는 세상은 있다. 방송에 질투가 심한 강아지가 출연했는데 전후맥락을 보니 천성이라기보다 질투를 유발시키는 환경 탓이었다. 주인은 자신이 키우는 개들을 ‘비교’하며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걸 보면서 황희 정승의 소(牛) 일화가 떠올랐다. 실은 개나 소나 마찬가지다. 소 두 마리 중 누가 더 일을 잘하냐고 물으니 농부는 소가 안 듣도록 귓속말로 답했다. ‘이유 같지 않은 이유’지만 속뜻은 관대하다. “혹시라도 2등 한 소가 서운해할까 봐.”
부담 없이, 가끔은 흥분하면서 비교하고 거리낌 없이 순서를 정하는 게 우리네 삶이다. 강아지도 비교하고 숟가락도 비교하고 아파트도 비교한다. 선호도를 물을 때 그냥 다 좋다거나 모르겠다고 하면 욕심쟁이거나 선택장애거나 회색분자거나 무성의한 걸로 오해받는다. 그런데 사실은 비교만 하는 게 아니라 평생을 비교당하며 사는 게 인간의 운명이다. 교실이건 선거판이건 불행한 건 꼴등이 아니고 2등일지도 모른다. 유명인일수록 체감이 더할 성싶다. 그래서 오늘은 이 노래가 가슴에 와 닿는다. ‘어떻게 그림자 잃고/ 어떻게 운명 거부해/ 어떻게 자신을 거부하고 다른 사람 되나’(뮤지컬 ‘모차르트’ ‘내 운명 피하고 싶어’ 중)
이미지 크게보기 주철환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노래방에도 ‘운명’이 있다. ‘나도 아! 햄릿처럼 지금 죽는 거냐 사는 거냐’(쿨 ‘운명’ 중) 엄살을 부리지만 실은 삼각러브스토리다. ‘둘 다 똑같이 사랑할 수는 없는 거잖아’(쿨 ‘운명’ 중) 생전 비교당하며 살았는데 설마 죽어선 비교 안 당하겠지. 아니다. 사람들은 고인도 비교한다. ‘EBS문화센터’(2014)에서 ‘클래식라이벌 열전’이란 아이템을 방송했는데 거기 등장한 두 사람이 바로 모차르트와 베토벤이다. 음악역사상 가장 유명한 ‘운명’(교향곡 5번)을 작곡한 사람이 바로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이다.
사진(초상화)으로만 보면 모차르트가 동생 같은데 실은 베토벤이 조카뻘이다. 경제력은 베토벤이 나았다. 황실이나 귀족에 소속된 모차르트와 달리 후원금이 쇄도하는 프리랜서작곡가였기 때문이다. 1787년 베토벤(17세)은 모차르트(31세)를 빈에서 운명적으로 만난다. 처음엔 시큰둥하더니 오페라 ‘돈 조반니’의 한 부분을 베토벤이 변주곡으로 즉흥 연주하자 ‘곧 세상을 향해 천둥을 울릴 날이 올 것’이라 예언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는 영화와 뮤지컬을 통해서 대중과 더욱 친숙해졌다. 피터 셰퍼(1926∼2016)의 상상력이 가미된 영화 ‘아마데우스’(1984)에선 살리에리가 경쟁자로 설정됐지만 뮤지컬 ‘모차르트’에선 두 개의 자아(볼프강과 아마데)가 끊임없이 충돌한다. ‘내 운명 피하고 싶어’는 볼프강이 아마데로부터 도망치면서 부르는(부르짖는) 노래다.
초연(2010)에선 주인공 볼프강 역으로 임태경, 박건형, 박은태, 김준수 등 4명이 캐스팅됐다. 모두 쟁쟁한 실력자다. 사람들은 누가 가장 적역이었나를 말하다가 결국은 누가 티켓파워가 가장 큰지도 비교한다. 저마다 최고임을 자부하는 당사자들은 심정이 어떨까. ‘오케스트라’(1936)의 저자 파울 베커는 ‘운명’ 4악장을 순서대로 싸움, 희망, 의심, 승리로 표현한 적이 있다. 승자는 상처를 주지만 성자는 감동을 남긴다. 악성(樂聖)은 운명을 피하지 않았다.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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