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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엔 따뜻한 의사들이 많이 나옵니다. ‘키다리 아저씨’처럼 가난한 환자들의 병원비를 대주기도 하고, 딸의 혼인날 수술한 아버지를 대신해 결혼식장을 찾기도 합니다. ‘이런 의사들이 정말 있단 말이야?’ 싶을 만큼 좋은 사람들이죠. 드라마를 향한 시청자들의 사랑엔, 환자를 온기로 보듬는 의사들의 모습이 그저 ‘판타지’만은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는지도 모릅니다.

리타 샤론 등 미국 컬럼비아대 연구진이 쓴 ‘서사의학이란 무엇인가’(김준혁 옮김, 동아시아)는 드라마 인물들처럼 ‘공감하는 의사’가 되는 법을 알려줍니다. 제목에서 짐작하듯 책은 서사, 즉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서사의학은 서구에선 1990년대부터 의료인문학의 한 분과로 자리 잡았습니다. 문학 텍스트를 통해 환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마음을 읽는 훈련을 하는 겁니다. 샤론도 20년 전 대학에 서사의학 프로그램을 만들어 의대생들이 시와 소설을 읽고, 그 감상과 해석을 글로 표현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앨리스 먼로의 단편 ‘물 위의 다리’를 읽고 인물들의 상호작용에 관해 써보세요”라는 식의 과제를 내주면서요.

서사의학은 인간을 ‘육체’와 ‘정신’이 분리된 존재로 전제하며 치료 대상을 육체에 한정한 전통의학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됐습니다. 전통의학 관점에선 환자의 ‘마음’보다 육체를 파악할 수 있는 ‘의무기록’이 중요하니 진료실에 ‘교감’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고 비판하면서요. 서사의학의 초창기 연구자들이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봤다면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혀를 찼을 겁니다. 쉴새 없이 몰려드는 환자를 감당하며 생기는 스트레스를 이해 못 하진 않지만 생명을 다루는 의사에겐 특별한 공감 능력을 바라게 됩니다. 환자와 의사 사이의 ‘위계’를 없애고, 환자의 감정을 진료의 중심에 두는 능력 말입니다.

이쯤 되니 ‘의료 행위’와 ‘문학’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소통하는 환자와 의사처럼 독자와 캐릭터가 관계를 맺는 일이며, 타인의 세계를 이해하려 애쓰는 일이니까요. ‘관계 맺기를 통한 이해’야말로 서사의학이 의료인에게 부과하는 ‘미션’이니까요. 그러고 보면 ‘경청’과 ‘교감’이 어디 의사에게만 필요한 능력인가 싶기도 합니다. 상대를 향해 귀를 쫑긋 세우고 함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것은 우리 모두의 ‘미션’ 아니겠습니까.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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