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5월 30일 광주에서 열린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 합동연설회에서 황우여(왼쪽부터) 선거관리위원장, 주호영·나경원·조경태·홍문표·이준석 후보, 김기현 원내대표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野 ‘이준석 돌풍’ 讀法

젊은 보수 돌풍, 청년에 대한 오마주 아닌 ‘대선주자 구인광고’만 내는 무기력 보수야당에 대한 실망
李, 청년기에 고도의 훈련·검증으로 성과 축적한 마크롱·캐머런과는 달라… 성장·혁신·정권창출의 비전 내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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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야당인 국민의힘 당 대표 예비경선에서 화려한 경력의 중진들을 제치고 압도적 1위를 기록한 무관의 청년 ‘이준석 돌풍’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준석을 청년기의 김대중(DJ)이나 김영삼(YS),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이나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과 비교하기도 하는데, 좀 다르다. 이들은 현재의 이준석과 비슷한 나이 때 이미 고도로 응축된 정치 훈련과 검증을 거치며 성과를 쌓았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준석 돌풍은 생물학적으로 젊은 세대에 대한 ‘오마주’가 아니다. 변화를 수용하지 않고 앙시앵레짐(구체제)을 유지하려는 야당에 대한 실망, 자체 비전 없이 ‘대선주자 구인광고’에만 목을 매는 무기력함에 대한 환멸이다. 당이 젊어진다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것만으로 정권 창출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이준석 돌풍이 현상을 넘어 실체로 가려면 그 안에 ‘시대정신’이 담겨야 한다.

◇이준석과 마크롱의 차이

정당의 대표, 특히 거야(巨野)의 당 대표는 민주주의국가에서 3권분립의 한 축인 대의기구의 지도자라는 점에서 막중하다. 대통령과 ‘영수회담’을 하는 자리이자, 청와대·집권여당과 함께 국정 협치를 논의하는 정점에 있는 자리다. 36세에 거대야당 대표에 도전해 예비경선에서 압도적 1등을 기록한 이준석 돌풍은 확실히 흥행거리를 제공했다. 당에 활기가 넘치고 역동성이 생겼다. 역대 어느 보수정당도 이런 정도의 폭발적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이준석은 청년기의 마크롱이나 캐머런, 혹은 비슷한 나이 때의 DJ나 YS에 비견될 수 있을까. 외견상 유사한 지점들이 있지만, 응축된 훈련과 검증을 받고 성과를 쌓았느냐는 점에서는 좀 다르게 보는 시각도 있다. 마크롱은 대학 시절부터 각종 선거 캠프에 참여하는 등 정치학교에서 훈련받았고 30대에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과 경제산업부 장관을 지내는 등 고도로 압축적인 정치 검증 코스를 밟았다. 캐머런이 영국 보수당에서 정치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22세의 일이었다. 이후 39세에 보수당 대표가 되기 전까지 장관 보좌관과 하원의원, 그리고 주요 당직을 섭렵했다.

DJ는 30대 초반 정치에 입문해 1971년 박정희에 맞선 민주당 대선 후보로 돌풍을 일으킬 때까지 주요 당직과 국회의원 3선 경력을 쌓았다. 그의 동지이자 라이벌인 YS는 20대에 총리 비서관으로 정치를 시작했고, ‘40대 기수론’을 표방할 당시 이미 4선 의원을 지냈다.

정치인은 ‘광의(넓은 의미)의 정치학교’에서 꾸준히 훈련받고 검증받으면서 단련된다. 단박에 큰돈 벌 수도 있는 코인이나 로또가 아니다. 글로벌 영 리더들 대부분이 정당의 대표나 대권 주자가 되기 전에 이미 응축된 정치 경험과 내공을 갖고 있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이들에겐 20∼30대에 국회·정당·정부 등에서 꾸준히 훈련받고 집중적으로 검증받으며 차곡차곡 성과를 남겼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젊은 보수 돌풍, 왜 불었나

이준석은 서울과학고와 미국 하버드대를 나오고 26세 때인 2011년 당시 집권여당인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 발탁된 ‘젊은 능력자’의 전형적 모델이다. 한때 ‘박근혜 키즈’ 혹은 ‘유승민 키즈’로 불렸는데, 총선에 3번 나가 3번 떨어지면서 유권자의 검증을 받는 덴 실패했다는 평도 듣는다.

그런 이준석이 어떻게 보수 돌풍의 주역이 됐을까. 이는 무엇보다 보수 본당을 자임하는 국민의힘의 현 처지에 대한 유권자의 강한 불만, 보수정치 혁신에 대한 기대와 관련이 있다. 혁신의 초점은 앙시앵레짐의 해체와 발전적 재건,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한 정권교체로 요약될 것이다.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낸 김병준 교수는 “이준석 돌풍은 국민의힘이 혁신해야 한다는 국민의 강력한 메시지로 읽힌다”면서 “그가 만일 당 대표가 된다면 이는 지금의 당을 해체하고 새롭게 재건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 전문가들은 이준석 돌풍을 ‘양가적(兩價的)’이라 해석한다. 유창선 평론가는 이준석에 대해 “공동체 전체를 보듬고 가기에는 부족한 리더십이지만, 변화에 둔감하고 완고한 야당의 변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된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라고 분석했다. 윤석규 평론가는 “이준석 현상엔 거품이 끼어 있다”면서도 “구체제의 몰락을 재촉하고 그 폐허 위에 새싹이 돋아나게 할 것이라는 점에서 쓰임새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공통의 메시지는 이준석 돌풍이 구체제를 유지하려는 보수야당에 대한 실망이며, 나아가 기득권에만 안주하려는 무기력한 전체 정치권에 대한 환멸이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세대교체와 시대정신

이준석 돌풍이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가장 빈번하게 제기되는 세대교체론을 또 한 번 소환한 것은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세대교체론이 그 자체로 시대정신이 될 수 있는지다. 독일의 정치사상가인 헤겔에 따르면 시대정신은 ‘특정한 시기에 전반적으로 공유되는’ 속성이다. 하지만 세대교체론은 ‘어느 시기든 제기돼 논란을 부를 수 있는’ 의제다. 세대교체론이 곧바로 시대정신이 되는 건 아니다.

1992년 대선을 앞둔 시기 이종찬, 이기택, 박찬종 등이 세대교체론을 들고나오면서 여·야 대선 주자인 YS와 DJ의 20년 아성에 도전했다. 하지만 이는 YS의 ‘시대정신 교체론’과 DJ의 ‘정권교체론’ 앞에 무력화됐다. 2000년 들어 김대중·김영삼·김종필 시대가 끝난 후에도 ‘포스트 3김’ 시대를 이끌어갈 영웅들은 나오지 않았다. 86세대도 국회의원 선수(選數)를 쌓고 기득권이 돼가면서도 지도자의 덕목을 키우지는 못했다. 시대정신을 담아내지 못한 탓이다.

이준석의 강점은 젊음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거대야당을 지휘하고, 여권과 국정 협치를 도모하며, 대선의 공정한 관리를 통해 9개월여 앞으로 닥친 내년 3월 대선에서 승리해 정권교체를 이루기에는 부족하다. YS와 DJ, 마크롱과 캐머런이 청년기에 정치판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은 ‘젊었기 때문’이 아니라 ‘젊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정신을 구현하려는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었다.

◇현상에서 실체로

이준석 돌풍은 아직 ‘현상’에 머물러 있다. 이것이 ‘실체’가 되려면 무엇보다 성장과 공정론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 그리고 혁신과 정권창출의 비전이 담겨야 한다. 이준석 돌풍이 세대교체에만 의지해서도 안 된다. 세대교체가 역동적인 정치 담론과 만나려면 그 안에 시대정신이라는 내용을 담아내야 한다.

전임기자·행정학 박사


■ 세줄 요약

이준석과 마크롱의 차이 : 이준석 돌풍이 당에 활력을 부름. 하지만 그는 청년기부터 압축적인 정치 검증 코스를 밟았던 마크롱·캐머런과는 다름. 젊은 보수 돌풍은 생물학적 청년에 대한 ‘오마주’가 아닌 구체제에 대한 ‘환멸’임.

젊은 보수 돌풍, 왜 불었나 : 무엇보다 보수 본당을 자임하는 국민의힘의 현 처지에 대한 유권자의 강한 불만, 보수정치 혁신에 대한 유권자의 기대와 관련이 있음. 혁신의 초점은 앙시앵레짐 해체와 보수정치의 발전적 재건임.

세대교체와 시대정신 : 세대교체론이 시대정신은 아님. 이준석은 젊지만 그것만으론 당을 이끌기에 부족. 이준석 현상이 실체가 되려면 그 안에 성장과 공정에 대한 시대정신, 그리고 혁신과 정권창출의 비전이 담겨야 함.


■ 용어 설명

‘시대정신’이란 특정한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정신 자세나 태도. 독일의 J G 헤르더와 J W 괴테가 이 말을 사용했고 G W F 헤겔에 이르러 완성된 개념으로 정착됨.

‘정치학교’란 정치적 자질과 덕목을 훈련·검증받는 장(場). 지방의원과 단체장, 정무직 보좌관·비서관, 캠프·정당·국회·정부 등에서 경험하는 것을 포괄하며 이를 ‘광의의 정치학교’라 부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