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외화 ‘분노의 질주:더 얼티메이트’가 개봉 첫 주 130만 관객을 동원해 코로나19 창궐 이후 고사 상태에 놓인 극장업계에 단비를 뿌렸습니다. 26일에는 디즈니 원작 만화를 실사로 옮긴 ‘크루엘라’가 그 배턴을 이어받았는데요. 27일 오전 10시 기준, 두 영화의 예매율 총합은 67%에 육박합니다.

‘분노의 질주’와 ‘크루엘라’의 공통점은 한국을 최초 개봉 국가로 점찍었다는 것인데요. ‘분노의 질주’의 경우 북미 개봉일보다 무려 37일이나 빠릅니다. 이에 앞서 앤젤리나 졸리 주연작인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역시 한국에서 첫선을 보였는데요. 왜 하필 ‘한국’일까요?

이는 2010년 이후 급격히 팽창한 한국의 영화 산업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 전까지 한국인은 연간 인당 4편 이상의 영화를 관람하며 세계에서 가장 자주 극장을 찾는 것으로 집계됐죠. 특히 아이언맨·캡틴아메리카·헐크 등이 등장하는 마블 영화와 ‘트랜스포머’ 시리즈 등 한국에서 최초 공개된 영화는 북미 지역을 제외하면 한국이 압도적인 흥행 1위 국가인데요. 인구 규모에 비해 영화 수요가 높고 멀티플렉스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입소문이 나면 단기간에 관객을 폭발적으로 모을 수 있기 때문에 한국 시장을 영화 성패를 가늠하는 ‘테스트 베드(test bed)’로 삼고 있는 셈입니다.

한국이 전 세계 문화 콘텐츠의 중심으로 부각된 것도 이런 결정에 영향을 미쳤는데요. 한국은 아시아 전역으로 향하는 허브(hub) 역할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보급률과 SNS 사용량이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 네티즌 사이에서 “재미있다”는 반응이 나오면 엄청난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죠. ‘분노의 질주’를 배급한 유니버설 픽처스의 베로니카 콴 반덴버그 회장이 “수준 높은 자국 영화 산업을 가진 한국 관객들이 얼마나 영화를 사랑하고, 극장을 지지하는지 안다”며 “한국 관객들의 지지는 폭발적 흥행을 이끈 열쇠가 됐다”고 전한 이유입니다.

또 다른 속내는 K-방역과 관계있는데요. 미국 주요 극장이 지난 1년간 사실상 영업을 포기한 것과 달리, 한국 극장은 정상 영업하면서 단 1건의 2차 감염도 발생하지 않았죠. 멀티플렉스를 통한 대규모 상영이 가능한 동시에 안전까지 보장된 한국 시장을 잇달아 최초 공개 무대로 삼는 것은, 어찌 보면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