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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봉 ‘들에 핀 꽃들은…’

“이런 거 제보하면 너희만 힘들어진다.” 군대 간부가 한 말인데 이분 역시 지금 힘든 상황에 놓여있을 성싶다. 제보자와 ‘피고발자’ 모두 곤란에 빠트린 ‘이런 거’란 무엇인가. 시작은 사병의 질문이었다. “다른 곳은 식사가 어떤 식으로 나오는지 궁금합니다.” ‘오징어 없는 오징어 국’ 사진과 함께 올라온 병사의 휴대전화 화면은 전국의 부모 얼굴에 그늘을 만들었다.

차제에 음악동네 급식상황도 살펴보자. ‘기상나팔에는 투덜대지만 (중략) 식사시간에는 용감한 병사’ 노래 제목은 ‘육군 김일병’이다. 원곡자는 봉봉사중창단인데 줄여서 그냥 봉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육군에 김일병이 있다면 공군엔 ‘빨간 마후라’가 있다. ‘빨간 마후라를 목에 두르고/ 구름 따라 흐른다/ 나도 흐른다’는 노래를 부른 쟈니브라더스도 4중창단이다.

1960년대에 유행한 남성4중창단의 출발은 블루벨즈였다. ‘노란 샤쓰의 사나이’를 작곡한 손석우가 만든 프로젝트 그룹이었다. ‘삼천만의 가슴에 현대인의 우수를 울려주는 종’을 표방하고 지은 이름이다. 블루(blue)는 원래 양면성을 지닌 단어다. ‘블루버드’하면 파랑새지만 ‘블루스’하면 다소 우울한 빛깔의 음악이다. 블루벨즈는 파랑새 쪽에 가까웠다. 명랑한 노래를 많이 불렀는데 대표곡은 ‘즐거운 잔칫날’이다. ‘잔치 잔치 벌렸네/ 무슨 잔치 벌렸나/ 복순이가 시집가고 삼돌이가 장가가요’로 시작해서 ‘슬하에는 아들 손자 딸 손녀/ 삼돌영감 기뻐서 너털웃음 하하하/ 복순할미 따라서 맞장구를 치네요’로 끝난다. 최근 오천만의 가슴에 불을 지른 병사는 아마도 1960년대 ‘육군 김일병’의 손자 나이쯤에 해당할 것이다.

‘즐거운 잔칫날’엔 꽃들도 합창을 한다. ‘뜰엔 동백꽃 향기 넘쳐흐르고/ 신방에는 사랑 사랑 넘치네’. 그러나 삶이 늘 향기로운 건 아니다. 인생은 짧지만 일생은 길다. 어릴 적엔 ‘옛날 옛날 옛적에/ 간 날 간 날 간 적에/ 아기자기 재미나는 이야기 길로 가자’(박목월 시, 이계석 작곡 ‘이야기 길’ 중)고 다짐했건만 살다 보면 잔칫날도 있고 제삿날도 있다.

봉봉사중창단의 ‘육군 김일병’ 음반에는 번안곡이 몇 곡 들어있다. 흐드러지게 핀 동백꽃과는 사뭇 다른 꽃의 일생을 담은 노래도 있다. ‘들에 핀 꽃들은 어디로 가나/ 어여쁜 아가씨들이 꺾어가리/ 곱게 핀 꽃들도 시들어가네/ 먼 옛날부터 먼 훗날까지’(‘들에 핀 꽃들은 어디로 가나’ 중) 여기서 끝이 아니다. ‘어여쁜 소녀는 어디로 가나/ 씩씩한 사나이 품에 사라지리’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씩씩한 청년은 새하얀 백발이 돼 외로운 무덤에 이른다. 마지막엔 ‘모두 다 꽃이 돼 저 들에 피리라/ 먼 옛날부터 먼 훗날까지’로 대미를 장식한다.

원곡의 제목은 ‘꽃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다. 이렇게 서정성 짙은 노래를 영국의 주간지 뉴스테이츠맨이 정치적인 노래 톱20에 선정한 까닭은 뭘까. 봉봉사중창단은 그저 인생무상으로 해석했지만 사실 이 노래의 메시지는 반전(反戰)이다. ‘씩씩한 사나이’가 군대에 가서 전사한 사연을 봉봉은 쏙 빼버린 거다.(Where have all the young men gone … all the soldiers gone … Gone to grave-yards everyone)

킹스턴 트리오, 존 바에즈, 피터 폴 앤드 메리 등 수많은 가수가 커버(리메이크)했는데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뜻밖에도 시작은 러시아의 돈강이다. 볼가강이 뱃노래로 잘 알려졌다면 돈강은 미하일 숄로호프의 소설 ‘고요한 돈강’으로 유명하다. 원곡자인 피트 시거(1919∼2014)는 미국 포크음악의 시조새다. 그래미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지만 1960년대 인권운동가, 반전평화운동가기도 하다. 가사는 소설에 나오는 코사크민요에서, 멜로디는 아일랜드 목동의 노래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대한민국 김일병으로 시작해서 러시아 숄로호프까지, 오징어 없는 오징어 국으로 시작해서 고요한 돈강까지 헤엄쳐 왔으니 음악의 강은 참 넓고도 깊다.

작가·프로듀서
노래채집가

이미지 크게보기 주철환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