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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 경제부 차장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4주년 연설과 기자회견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경제가 나아지고 있다는 ‘자화자찬’은 예상한 바였다. 다만 눈에 띈 건 “부동산 문제만큼은 정부가 할 말이 없는 상황이 됐다”고 정책실패를 인정한 대목이다. 지난해 신년사에서 “집값을 취임 수준으로 돌려놓겠다”던 자신감을 이번엔 찾아볼 수 없었다. 무엇이 그의 태도를 바꿔놓았을까.

사실 갖가지 지표들은 이미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실패로 정의한 지 오래다. 전국 아파트 평균 가격(KB부동산)은 현 정부 출범 당시(2017년 5월) 평균 3억2125만 원에서 4년이 지난 지금(2021년 4월) 4억8822만 원으로 51.9% 올랐다.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가격은 6억708만 원에서 11억1123만 원으로 83.05%나 급등했다. 분양 청약 경쟁률도 6배 뛰었다. 지난해 ‘임대차 3법’의 시행으로 서울의 전세 가격은 4억2619만 원에서 6억1004만 원으로 43.1%나 치솟았다. 이 수치들이 다주택·투기꾼을 배척하고 서민·무주택자들을 위해 펼친 현 정부 부동산 정책의 결과물이다. 실패를 인정조차 하지 않던 정부는 그 책임을 ‘공시가격 현실화’라는 이름으로 국민에게 세금 폭탄으로 떠넘겼다. 현장의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임기 3년 차까지도 “시장이 안정되고 있고, 부동산 가격을 잡을 수 있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집값과 실정에 대한 언론의 지적에 정부는 ‘가짜뉴스’ 취급하기 바빴다. 결국 그를 고개 숙이게 만든 것은 4·7 재·보궐선거 결과였다. ‘진실’보다 ‘표’ 앞에 겸손한 정치인들의 습성을 문 대통령도 나타낸 셈이다.

이 회복할 수 없는 실정의 가장 큰 피해자들은 바로 청년층이다. 현 정부가 물 쓰듯 쓴 국가재정을 이들이 메워야 한다는 걸 이 대목에 굳이 얘기할 필요도 없다. 이미 이들은 ‘벼락 거지’ 상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청년들이 영혼까지 박박 긁어 대출을 일으켜 내 집 마련에 나서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마저도 포기한 청년층은 주식, 가상화폐 투자 쪽으로 부나방처럼 몰려가고 있다. 경제는 유기적이다. 부동산 실정(失政)이 청년층을 자포자기하게 만들었고, 묻지마 투자에 모든 것을 걸게 했다.

회사 신입사원들에게 더 이상 “월급을 성실히 모아 집을 사라”는 선배들의 조언이 먹혀들지 않는 시대다. 한 지인은 시도 때도 없이 회사에서 스마트폰으로 코인시세만 쳐다보고 있는 후배에게 일하라는 잔소리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모든 기회가 막혀버린 젊은이들이 이조차도 불공정으로 받아들일까 걱정해서였다.

사실 이쯤 되면 어떤 방식으로라도 정부는 책임을 져야 한다. “국민이 집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게 해주겠다”며 저지른 일련의 정책이 서민층의 삶을 파탄으로 몰아넣었고, 청년층의 꿈을 꺾어버렸다. 누가 실패한 정책에 대해 형사처벌을 하지 않는다고 감히 말할 수 있나.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고 했다.

제발 문 대통령이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5주년 임기를 마치는 소감에선 부동산 시장 파탄에 대해 ‘처음 의도한 바는 선의였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