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안병진 경희대 문명대학원 교수가 지난 4일 인터뷰에서 내년 대통령선거 전망과 진보, 보수의 집권 전략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호웅 기자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거대 정당간 적대적 상호의존
환골탈태 없이 집권해온 이유

진보, 공감·문제해결력 회복을
보수는 다원성의 이해도 높여야

진영을 넘어선 제도적 견고함
‘인테그리티’지키는 정치 필요

‘상인의 감각·書生의 문제의식’
정치인들은 ‘DJ 명언’ 새기길

내년 大選, 기득권 타파 vs 공정
이재명과 윤석열 대결 가능성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정치학자인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내년 대통령 선거의 키워드로 ‘기득권 타파’ ‘공정’ ‘문제 해결력’을 제시하며 이재명 경기지사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결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진보진영은 ‘진보 포퓰리스트’가 필요하고, 보수진영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결합한 형태가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한국은 (거대 정당 간) 적대적 상호의존이 유지되고 있다”며 “그래서 그동안 환골탈태를 안 해도 집권할 수 있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인테그리티(integrity)’라는 미국의 개념을 인용하며, 진보와 보수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체제 속에서 이를 어떻게 발전시킬지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진보는 공감 능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회복해야 하고, 보수는 합리적 보수, 밀레니얼 세대가 얘기하는 다원성에 이해도가 있는 보수로 전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터뷰는 지난 4일 문화일보에서 진행했다.

―지난 ‘4·7 재·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참패는 진보진영의 도덕적 우위가 사라졌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문재인 정부를 상징하는 두 사진이 있다. 하나는 임기 초반 대통령과 조국 민정수석 등이 커피를 들고 청와대를 걷는 사진이다. 촛불을 통해 한국이 조금 더 리버럴한 사회가 됐다는 인상을 받았다. 다른 하나는 조국 청문회 사진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도덕적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그동안 누적된 분노가 폭발했다. 1987년 이후 민주화 진영이 가지고 있었던, 조금 더 인간적이고 도덕적 사회를 꿈꾼다는 인식이 완전히 무너졌다.”

―민주당은 왜 현실을 못 읽었다고 보나.

“민주화, 운동권 진영이 극단적인 진영 논리에 빠졌다. 현 집권 세력은 권력을 잡고 있지만, 스스로 약자라고 생각한다. 약자로서 가지는 불안감, 절망감과 함께 한 번 가진 걸 계속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보수의 독점 속에서 서구와 달리 물적으로 토대도 취약했다. 다른 하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트라우마가 백래시(backlash·반발)를 불러왔다.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우리 진영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로 나타난다. 대표적인 게 ‘우리 ‘이니(문재인 대통령 애칭)’ 하고 싶은 대로 해’다. 정치는 팬클럽이 아니다. 좋은 팬클럽도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 죽비를 드는데 하물며 정치는 더욱더 그래야 한다. 트라우마와 그간의 취약성이 핑계가 될 수는 없다. 절대로 양보해서는 안 되는, 진영을 넘어서는 도덕이 있다. 한국은 인테그리티를 지켜야겠다는 사람이 너무 적고 너무 홀대를 받아왔다.”

―인테그리티를 조금 더 쉽게 설명해 달라.

“여러 맥락 속에서 사용돼 하나의 뜻으로 옮기기는 어렵다. 한 인간으로서는 온전히 지켜야 할 인격적 존엄성 같은 걸 말한다. 제도로서는 견고성이라고 할까. 예를 들어 미국 대선 후 CNN이 가장 많이 쓴 단어가 인테그리티다. 미국 선거가 가지는 온전성, 견고함을 말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결과에 불복하려 한 것은 제도를 훼손하는 행위로 자유주의,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누구도 해서는 안 되는 행위다. 공화당 의원 중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동의하지 않았던 사람은 이념을 따른 게 아니다. 인테그리티를 지킨 사람이다.”

―한 강연에서 현 정부는 민주주의를 다수주의로 착각했다고 비판을 했다.

“과거에는 오해를 살 수 있다고 생각해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라는 말을 가급적 안 썼다. 그러나 조국 사태를 보면서 한국이 얼마나 훌륭한 자유주의 민주주의 국가인지 진보인 제가 적극적으로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뼈대를 두고 싸우지 않는다. 여의도 정치권은 상식이 부족해서 다수주의를 1987년 이후 쌓은 민주주의처럼 생각한다. 헌법을 다시 읽어봐야 한다. 왜 민주주의 앞에 자유가 붙었을까. 왜 민주와 공화가 같이 붙었을까. 선거의 결과로 엘리트들에게 위임한다고 하더라도, 법적인 지배라고 하는 건 다수가 결코 힘으로 짓누를 수 없는 걸 말한다. 짓누른다면 우고 차베스 정권과 뭐가 다르겠나.”

―보수는 어떻게 보나. 보수가 잘해서 재·보선을 이긴 건 아니라는 평가가 많다.

“일부 젊은 정치가를 중심으로 합리적 보수, 다원성에 이해도가 있는 보수가 조금은 성장하는 것 같다. 김웅, 윤희숙 의원을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정당 전체로는 천민 보수주의를 아직 넘어서지 못했다. 국민의힘은 박세일 선생이 꿈꿨던 보수로 질적 전환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진보가 퇴행적 모습을 보이는 이유 중 하나가 보수가 실력이 없고 합리적 보수 가치를 내놓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국은 적대적 상호의존이 유지되고 있다. 그러니 환골탈태를 안 해도 집권할 수 있다. 선거 국면만 평가하면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잘했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단일화도 긍정적이었다. 사실 보수가 대선을 치를 해법은 이미 다 나왔다.”

―내년 대선의 키워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기득권 타파, 공정, 문제 해결력, 이 세 가지 중 국민이 어디에 비중을 두는가가 중요할 것이다. 기득권 타파라면 이재명 경기지사에게 조금 유리할 수 있다. 공정에 비중을 둔다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앞설 수 있다.”

―이 지사는 어떻게 해야 하나.

“‘노무현 시즌 2’라는 의미에서 기득권 타파를 내세워야 한다. 후보가 난립하지 않는다면, 이번에 민주당이 이길 수 있는 길은 조금 과장해서 그것밖에 없다. ‘반기득권 동맹’이라는 브랜드로서의 이재명이 돼야 한다. 지금 시민이 느끼는 울분과 분노를 이해한다면 반기득권 아니면 이길 수 없다.”

―이 지사가 내세운 기본소득이 포퓰리즘이란 비판이 많다.

“기본소득이 반기득권 성격을 띠고 있다. 부동산 문제에서는 기본주택 외에 어떤 노선을 제시하는가가 중요하다. 재벌 문제는 과거의 좌파적 시각이 아니면서 재벌의 사회적 책임을 높일 어젠다가 필요하다. 이번 대선에서 국민의힘도 기본소득을 전면에 내놓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이미 강령에 넣었다. 미국 벤처기업가들이 기본소득을 주장한다. 혁명을 예방하자는 의도로,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한) 비스마르크적인 것이다. 김종인 위원장은 비스마르크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보수가 이긴다면 마크롱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를 결합한 형태가 될 것이다. 진보 쪽은 진보 포퓰리스트가 돼야 한다.”

―민주당은 정권 창출을 위해 전략적 선택을 해 온 정당이다. 친문(친문재인)의 행태를 보면 그런 DNA가 약화한 것 같다.

“안타깝게도 잃어버렸다. 하지만 여기서 대한민국의 위대함이 다시 드러난다. 예상보다 너무 민주당이 참패했다. 한국의 가장 탁월한 유권자인 호남은 이 지사를 전략적으로 밀 수 있다. 과거 노무현 바람도 호남에서 출발했다. 보수 유권자는 대한민국을 구한다는 심정인 것 같다. 진보인 저는 내용적으로 동의할 수 없지만 그들의 진심은 존경한다. 보수 유권자들은 굉장한 위기감이 있어서 대선 때 엄청난 투표율로 나올 것이라고 본다.”

―정당이 보통 크게 바뀌는 시기는 대선에서 패하거나 대선 패배가 눈앞에 다가왔다고 느낄 때다. 후자는 실제 사례가 별로 없다.

“드물다. 비교적 좋은 모델이 박근혜의 천막 당사다. 아주 놀라웠다. 대주주니까 가능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과거 재야 운동세력을 영입하면서 상당한 지분을 넘겼다. 김 전 대통령은 집권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김중권 비서실장 임명이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금 정권은 그냥 회전문 인사다. 그러니 보수로부터 존경도, 협조도 받지 못한다. DJ의 말은 세계적 명언이다. ‘상인의 감각과 서생의 문제의식’. 정치하는 사람들은 아침마다 이걸 외우고 나서 출근해야 한다.”

―윤 전 총장은 어떻게 평가하나.

“만나 본 적은 없지만, 예전부터 윤 전 총장의 내공은 높게 평가해 왔다. 보수 엘리트로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나락까지 떨어진 적이 있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 금융사기 수사의 최고 전문가라는 경험이다. 인간 군상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사채와 사기꾼의 세계는 진정으로 리얼한 날것의 세계다. 한국 사회 최악의 괴물들을 만나면서 사람을 판단하는 실력이 쌓였을 것이다. 조직의 최고 리더가 가장 어렵게 생각하는 일이 판단하는 거다. 윤 전 총장은 판단력이라는 부분에서 아직 실수가 없는 것 같다. 그가 검찰총장을 넘어 대통령다운 훌륭한 보수주의 비전을 가질지는 회의적이지만 기존 제3의 후보들보다는 생존력이 좋을 것이라고 본다.”

인터뷰 = 조성진 정치부 차장 threeme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