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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문가 허남정 박사

한·일 간의 정치적 경색국면 속에서 ‘일본은 원수인가 이웃인가’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단행본을 낸 사람이 있다. 주인공은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출범과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오늘의 한·일 관계 현주소를 되돌아보게 하는 허남정(69) 박사다.

적지 않은 나이에 허 박사는 배낭에 태극기와 일장기를 달고 일본의 최남단 규슈(九州) 가고시마(鹿兒島)현에서 홋카이도(北海道) 아사히카와(旭川)까지 61일간 걸었다. 2019년 4월 1일부터 5월 31일까지 총연장 4600㎞를 이동하면서 다양한 계층에서 수백 명의 일본인을 만났다.

진솔한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으며 사는 모습과 애환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이미 저승으로 간 일본 영웅들의 행적을 둘러보며 무언의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런 시공을 초월한 만남이 다채롭게 펼쳐지며 행간에 가득 담겨 있어 책장을 넘기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감동과 감격이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난다.

백제 부흥군을 지원하기 위해 파견된 2만7000명의 왜군이 나당연합군의 화공으로 불길 속에서 죽어가며 “이제 백제가 망하면 조상의 묘는 누가 돌볼 것인가?”라고 절규했다고 하는데, 그 말을 들으며 그들이 한 뿌리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외할아버지의 동생인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전 총리가 타계하기 1년 전, 가고시마 현의 도예가 심수관을 찾아가 자신도 조선인의 후예라고 고백하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숙연해진다.

40년 일본 전문가로서 경험을 쌓아온 허 박사는 자신의 식견을 유감없이 발휘해 일본의 문화와 독특한 관습 그리고 그들의 의식구조의 심연 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다 알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는 모르는 것이 더 많은 이웃 일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깊게 할 수 있다.

허 박사는 2018년에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800㎞를 걸었고 그 결과물인 ‘산티아고 순례자들’을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그리고 2014년에는 한·일 관계의 산증인 포스코 창업자 박태준의 평전 ‘박태준이 답이다’를 저술했으며 이 책은 일본에서 번역, 출간됐다.

이들 저서에 일관되게 흐르는 메시지는 평화적인 한·일 관계의 정립이다. 허 박사는 우리의 옛말 ‘세 닢 주고 집을 사고, 천 냥 주고 이웃을 산다’는 말을 자주 인용한다. 그는 퇴임 후 10여 년간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 위치한 일본인 교회와 분당 할렐루야 교회에서 설교통역 봉사를 해오고 있다. 오는 6월 말까지는 데이비드 앳킨슨의 ‘신관광입국론’을 번역, 출간한다는 그의 열정에 건강 비결을 물어보았다. 그는 “30년간 매일 수련하고 있는 우리의 전통 양생법 덕당 국선도 덕분이지요”라며 환하게 웃는다. 이규운

대한직장인체육회 마라톤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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