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 = 송재우 기자

글로벌 법인세율 올라도 韓은 세율 높아 외자유출 없을 듯
‘디지털稅’는 제조업까지 대상 확대땐 해외진출 기업 타격

매출 발생 국가에 과세권 주고
최저세율 21%로 상향한 뒤에
이보다 적은 세금 낸 기업들은
본국에서 추가로 과세할 방침

7월 G20회의서 승인될 가능성
정부 차원 대응책 착수도 못해
“정부 입장부터 명확히 밝혀야
기업도 세부 대책 마련 가능”

세금 확보를 둘러싼 글로벌 법인세 전쟁의 본격적인 막이 올랐다. 유럽은 그간 구글·페이스북 등 미국의 정보기술(IT) 공룡 기업을 겨냥해 일명 ‘디지털세’를 요구했고, 미국은 난색을 표해왔다. 그런데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고 미국이 돌변, “글로벌 법인세 최저세율을 21%로 상향하자”고 역제안하며 글로벌 최저한세 논의에 불이 붙었다.

글로벌 법인세가 조정된다면 한국 경제 역시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삼성, 현대, SK 등 해외에 진출한 다수의 한국 기업들도 글로벌 법인세 논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과 미국 간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아직 새로운 국제 조세체계의 적용 대상은 물론, 적용 여부까지 결정되지 않은 터라 한국 정부의 세수와 기업의 세 부담에 미칠 영향은 아직 깜깜이다.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 아니다 = 주요 20개국(G20)이 최근 공동성명서를 통해 글로벌 최저한세에 대한 해법을 이르면 올해 7월까지 도출하기로 하면서 글로벌 법인세 논의는 발등에 떨어진 불처럼 느껴지게 됐다. 정부 관계자는 21일 “갑자기 툭 튀어나온 논의가 아니다. 국제적으로 오랜 시간 논의돼 왔고 한국도 지속적으로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면서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글로벌 법인세를 둘러싼 각국의 줄다리기는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2000년대 들어 구글·페이스북·넷플릭스처럼 공장 하나 짓지 않고도 국경을 넘나들며 이윤을 얻는 디지털에 특화된 기업들이 많아졌다. 이들 기업은 세계 각국에서 돈을 벌지만, 정작 세금은 본국인 미국에만 내며 불만을 샀다. 더구나 아일랜드 등 법인세율이 극도로 낮은 나라에 사업장을 두며 사실상 법인세를 회피하는 경우도 생겼다. 현재 다국적 기업의 사업소득에 대한 과세권은 사업장 등 ‘물리적 실체’가 있는 곳에만 주어지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중심으로 약 10년 전부터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법인세 과세 방안’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계기다.

OECD가 ‘국가 간 소득 이전을 통한 세원 잠식’(BEPS) 대응 협의체를 통해 진행하는 새로운 글로벌 조세 체계 마련을 위한 논의는 크게 두 가지 틀에서 진행되고 있다. 공장 등 물리적 실체보다 ‘매출이 발생한 국가에 과세권을 줘야 한다’는 논리를 중심으로 새로운 이익 배분 기준을 만드는 논의가 ‘필라(Pillar)1’이다.

예를 들어 한 디지털 기업이 A국에 서버를 두고 B, C국에 각종 유료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A국 외에 B, C국도 세금을 걷을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다. 미국의 글로벌 디지털 기업을 겨냥해 유럽 국가들이 논의를 적극 주도하면서 ‘디지털세’ 부과 논의로 통용됐다.

◇미(美), 필라2로 디지털세 정면돌파 =디지털세 논의를 거부해왔던 미국은 바이든 대통령 취임 뒤 기류가 달라졌다. 자국 기업이 상당한 법인세를 세계 각국에 추가로 낼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반대해왔던 미국은 필라2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그동안 OECD는 다국적 기업의 조세 회피를 방지할 ‘최저한세’를 도입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었는데, 미국은 글로벌 법인세 최저세율을 그간 논의됐던 12.5%에서 21%까지 올리는 방안을 역제안했다. 이것이 ‘필라2’ 논의다. 글로벌 법인세의 최저세율을 정하고, 기업이 이보다 적게 세금을 냈을 경우 본국에서 추가로 과세하자는 방안이다.

미국이 자국 기업의 출혈이 예상됨에도 이 같은 방안을 꺼내든 이유는 법인세수 확보가 절실하고 미국 자본의 해외유출을 막기 위해서다. 바이든 행정부는 2조3000억 달러 규모의 초대형 인프라 부양책을 발표하는 등 경제회복을 위해 천문학적인 재정을 투입하려고 한다. 이에 따라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21%까지 내렸던 법인세율도 28%로 인상한다고 공언한 상태다. 미국 정부는 글로벌 법인세 최저세율을 21%로 올린다면 향후 15년간 1조 달러에 가까운 세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아울러 미국 중심의 다자주의를 지향하는 바이든 행정부로선 글로벌 과세제도 논의도 미국이 주도해야 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일부 유럽 정부는 미국이 제안한 글로벌 법인세 최저세율 설정 주장을 일단 반기고 있다. 오는 7월 열릴 G20 회의에서 글로벌 최저한세 논의가 승인될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되는 이유다. 다만 우리 정부는 각국 세법 등 체계가 달라 실제 시행까진 적어도 2∼3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한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질라… 한국 긴장 = 정부는 법인세율 하한선이 21%까지 올라가더라도 불이익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고 27.5%인 한국의 법인세율은 OECD 9위 수준으로 높은 편이다. 낮은 법인세율로 해외 투자를 적극 유치했던 아일랜드와 헝가리 같은 국가와 달리 외자 유출을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다만 미국이 세수 확보를 위해 자국 법인세를 올린 것처럼 한국 역시 법인세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에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글로벌 법인세율이 상향되더라도 국내 법인세 인상의 이유가 될 순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한국에 문제는 필라1 논의다. 당초엔 물리적 사업장 없이 각종 서비스로 세계 각국에서 이윤을 얻는 다국적 디지털 기업을 주 대상으로 해 디지털세란 별칭이 붙었지만, 최근 논의에선 대상 업종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은 업종과 상관없이 100개 기업을 대상으로 하자고 각국에 제안했다. 한국의 경우 반도체나 차 등 제조업 위주의 산업 구조라서 이전 디지털세 논의에선 피해를 볼 가능성이 낮았다. 반면, 미국의 제안대로 업종에 상관없이 규모를 기준으로 대상을 정한다면, 해외에 진출한 대기업들은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도 필라1 논의에 적용될 기업의 업종과 규모 등을 면밀하게 검토하며 협상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현대차·네이버·카카오 비상 = 현재까지 국내 기업들은 아직 이렇다 할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G20 재무장관들이 올해 중반까지 디지털세 과세 방안에 최종 합의하기로 했지만, 아직 디지털세 과세 내용이 구체화하지 않은 데다 정부 차원의 논의도 진행되지 않고 있어 대응책 마련에 착수하지도 못한 실정이다. 재계와 학계에서는 디지털세와 관련한 정부 입장부터 명확해져야 기업들도 대응 방안 마련 등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논의 전개 과정에 따라, 특히 삼성·LG 등 제조업 중심으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IT 기업들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해외사업 비중이 큰 대기업들은 전략을 다시 세워야 할 가능성도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디지털세와 법인세 논의가 어떻게 될지 세부 내역이 나오지 않아 아직 뚜렷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도 향후 상황을 주시하면서 대응 방안을 모색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인터넷 플랫폼 업계 한 관계자는 “아직 각국이 논의 중인 사안으로 방향이 정해진 이후에나 검토가 가능할 것”이라며 “디지털세 등이 글로벌 기업들의 공정한 경쟁이 목표라면 세금뿐만 아니라 국내외 사업자 간 역차별 규제도 해소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의 임동원 연구위원은 “필라1의 경우 삼성전자나 현대차와 같은 제조업에 기반을 둔 기업들은 당연히 제외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필라2의 경우에도 심도 있는 검토를 통해 적용 예외를 요구할 수 있는 근거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네이버 등 IT 기업들이 해외로 진출하면서 우리 기업도 현지에서 세금을 내게 돼 우리 정부는 디지털세를 걷는 것 자체에 명확한 입장을 두기 어려워졌다”며 “디지털세 관련 논의 자체도 아직 두루뭉술하게만 돼 있어 효과, 대응 방향 등을 논하기는 어려운데 정부가 어떤 입장인지 명확해져야 기업들도 대응방안 마련에 나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정우·이정민·황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