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 4·7재보선 결과의 정치적 의미

정치적 지식·관심 높고 자발적 참여 잠재력 갖춰…‘文정권 실정’ 공감대 기반으로 무능·오만한 ‘정권 심판’ 주도

검찰개혁 등 ‘쟁점 이슈’ 무력화, 부동산 폭등·LH사태 등 ‘합의 이슈’ 키워…향후 선거 판세 주도할 듯

이미지 크게보기

이번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결과가 한국 정치에 던져준 가장 큰 의미는 특정 정당에 대한 선호를 갖지 않는 ‘똑똑한 청년 무당파’가 부상했다는 점, 그리고 문재인 정부 국정 운영에 비판적인 ‘합의 이슈(valence issue)’를 기반으로 ‘진보정당 + 젊은 유권자 연합’이라는 기존의 정치연합을 해체했다는 점이다. 이번 보선 결과는 새로운 정치 공간의 형성 가능성을 보여줬다.

◇유권자와 사회적 ‘균열 축’

일반적으로 한국 정치를 보는 시각은 다음과 같다. ‘문재인 정부에서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진영 논리가 지배하면서 일방적인 편 가르기가 일상화했다. 진영 논리를 주도하는 정당들의 영향력이 강해지면 유권자의 투표 선택에 대한 지지 정당의 영향력이 더 커진다. 정당과 유권자의 연계가 강해질수록 태도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설득(persuasion)과 투사(projection)의 심리 기제가 작동한다. 따라서 유권자들의 정치이슈 인식과 후보자 평가는 지지정당과 일치하게끔 일방적 선호를 갖게 된다.

갤럽조사(4월 1주차)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지지자 중 대통령 직무 긍정평가와 부정평가는 각각 74%와 23%였다. 국민의힘 지지자 중 긍정평가 3%, 부정평가 95%로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상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같은 조사에서 지지 정당에 따른 상반된 평가 차이는 대통령 직무평가 시 중요 요인을 무엇으로 인식하는지에 따라 갈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중요 사안 선택과 인식 차이의 출발점은 정당일체감의 맥락에서 이해된다.

정당과 유권자의 관계를 분석한 글 가운데 ‘정당체계와 유권자 연합’이라는 논문은 가장 고전적 연구로 오랜 시간 논리의 타당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유권자들은 ‘사회적 균열 축’에 따라 지지 정당이 결정된다. 서구 민주주의국가에서 보편적인 균열 축은 노동-자본의 균열 축이다. 진보정당과 보수정당은 경제적 계층 균열에 따른 갈등을 대변하고 있다.

◇유권자 연합의 재편성과 해체

한국에서는 반공·경제 자유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보수세력과 민주화·적폐청산을 기치로 삼는 진보정당이 양당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균열 축에 토대한 유권자 연합(alignment)의 조건으로 볼 때 유권자의 정당일체감은 선거 유동성을 낮추고 정당체제의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강한 유권자 연합은 때로 선거에서 제기된 이슈에 대한 유권자의 판단 능력을 약화시키며, 결과적으로 선거를 통한 정치적 책임성과 유권자 반응성은 낮아진다.

그런데 유권자와 정당의 관계가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균열 축의 등장으로 인한 유권자 연합의 재편성(realignment)이나 유권자와 정당 관계가 약화하는 유권자 연합 해체(dealignment) 가능성이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21세기 들어 유권자 연합 해체가 두드러지고 정당 약화 현상이 수반되는 것이 세계적 추세다.

이번 4·7 서울·부산 보궐선거에서도 세대 간 정당 선호 태도가 확연한 차이를 보였고 특히 젊은층에서 정당과 유권자 간 연합 해체를 본격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매스미디어의 확대와 다양성, 그리고 시민의 교육수준 향상으로 유권자들은 정당에 의존하지 않고도 정치적 선택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를 접하게 됐고 정보를 독립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역량 또한 갖게 됐다. 특히 사회가 다분화하면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환경보호나 동물권 등 새로운 의제가 제기되고 이들 사이에 공정경쟁을 통한 사회적 성공이라는 가치의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실질적인 집단동원 실력을 과시하기도 한다.

◇똑똑한 젊은 무당파의 등장

기성 정당들이 젊은층이 새롭게 제기한 다양한 사회 요구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거나 외면하면서 정당 선호를 갖지 않는 세련된 유권자들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증가하게 됐다. 이들을 ‘인지적 무당파’라고 부른다.

러셀 돌턴은 인지적 동원에 의한 새로운 유형의 무당파 증가에 주목했다. 과거 정치 무관심층과는 달리 젊은 세대에서 정치적 지식과 관심이 높고 자발적 정치 참여 잠재력을 가진 인지적 무당파가 등장한 것이 그 특징이다. 이들은 고전적인 진보-보수의 단일적 정치이념에 따른 정당 추종 투표가 아니라 유권자 개인이 의제를 판단하고 독립적 평가를 통해 투표하는 의지와 능력을 갖고 있다. 이들은 정당일체감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선거마다 이슈의 특성에 따라 투표 선택을 달리할 가능성이 크다.

위 <그림>에서 한국갤럽 조사는 지난 한 해 동안 세대별로 무당파의 흥미로운 비율 변화를 보여준다. 40대 이하에서 무당파가 급격히 증가했지만, 50대와 60대 이상에서는 무당파 비율의 변화가 크지 않다. 이런 현상은 50대 이상은 정치이념에 따른 선호 정당 지지가 장기간 지속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40대 이하에서는 집권당의 현안 해결에 실망해 단기간에 정당 선호를 철회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정치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실용주의, 프래그머티즘(pragmatism)을 중시하는 ‘똑똑하고 까칠한’ 인지적 무당파가 젊은 층에 쏠려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4·7 선거는 이 같은 인지적 무당파의 파워를 보여준 새로운 선거 판세 형성의 전조라 할 수 있다. 정당에 대한 애착심이 아니라, 집권당의 업적을 평가하고 이를 처벌하거나 보상하는 책임을 묻는 유권자들이 선거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들은 이번 선거에서 검찰개혁이나 적폐청산 등 ‘쟁점 이슈(position issue)’를 무력화하고, 부동산 가격 폭등이나 LH 사태 등 집권당의 실정에 대한 심판을 ‘합의 이슈’로 만들었다.

◇젊은 무당파가 좌우할 선거 판세

젊은 세대를 더 이상 진보적 성향이라 단언할 수도 없고, 동시에 그들이 보수화됐다고 규정할 수도 없다. 이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면 투표 참여는 물론이고 다양한 형태로 정치 참여를 할 수 있는 의지와 잠재력을 가진 집단이다.

향후 선거에서도 이들 똑똑하고 까칠한 젊은 무당파의 선택이 선거 결과를 결정할 가능성이 커졌다. 전체 유권자의 3분의 1이 넘는 20대와 30대 상당수가 고정적 정당 일체감으로부터 자유로운 인지적 무당파로 분류된다.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이 올바른 국정 운영을 하기 위해서는 기성 정당에 의해 동원되지 않고 자신의 판단에 따르는 젊은 유권자의 특질과 가치관을 면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 세줄 요약

유권자와 사회적 ‘균열 축’: 유권자들은 ‘사회적 균열 축’에 따라 지지 정당을 결정함.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반공과 경제 자유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보수와, 민주화와 적폐청산을 기치로 삼는 진보가 균열 축을 구성.

유권자 연합 재편성과 해체 : 새로운 균열 축의 등장으로 정당·유권자 연합의 재편성 혹은 연합 해체의 가능성이 존재함. 이번 선거에서 2030은 검찰개혁 등 ‘쟁점 이슈’를 무력화하고, 집권당 심판을 ‘합의 이슈’로 만듦.

똑똑한 젊은 무당파의 등장 : 4·7 보선 결과가 한국 정치에 던져준 가장 큰 의미는 특정 정당에 대한 선호를 갖지 않는 ‘똑똑한 청년 무당파’가 부상했다는 점. 이들 ‘인지적 무당파’가 향후 선거 판세를 주도할 듯.


■ 용어 설명

선거에서 ‘설득’이란 유권자가 선택한 정당·후보에 맞춰 스스로 입장을 바꾸도록 하는 것. 반면 ‘투사’는 유권자가 특정 정당의 정책이나 입장을 자기의 그것과 같다고 여기도록 만드는 심리 행위.

‘인지적 무당파’란 정당 일체감 대신 유권자 개인의 독립적 판단과 평가를 통해 투표 선택을 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보유한 그룹을 지칭. 미국 UC 어바인대 러셀 돌턴 교수의 논문에 처음 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