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앤디 워홀 전이 열리고 있는 더현대 서울의 전시장 ‘알트원’ 내부 모습.

■ 아트 스페이스 넓히는 백화점들

현대, 1160㎡ 공간에서 워홀전
신세계, 이우환作 등 200점 판매
롯데, MZ세대 겨냥한 기획 전시

일반인 쉽게 미술 접하게 해줘
고객 요청땐 해외 작품 직구도
일각선 “미술 시장 왜곡” 우려

백화점의 아트 스페이스가 진화하고 있다. 국내 주요 백화점들이 미술작품을 선보이는 공간을 보다 넓고 고급스럽게 꾸미는 추세다. 과거처럼 고객이 앉아 잠시 벽면 그림을 보며 휴식을 취하는 데서 벗어나 국내외 명작을 관람하고 구매할 수 있도록 본격적인 아트 페어와 전시회를 펼치고 있다. 이는 그림을 보거나 사고 싶지만 화랑에 가기는 부담스러운 고객들에게 편안하게 미술품을 만나는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다. 평소 미술에 관심이 높았던 마니아는 작품을 관람한 후에 백화점의 다른 공간에서 쇼핑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백화점들의 이 같은 전략은 미술품 투자와 홈인테리어에 관심이 높은 아트슈머(art+consumer)를 새로 발굴하며 국내 미술 수요 저변을 확대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국내에서도 새로운 아트 컬렉터로 부상하고 있는 MZ세대 발길을 미술 시장으로 더 끌어들일 것으로 보인다.

이미지 크게보기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 여는 ‘블라섬 아트페어’(위)와 롯데백화점 인천터미널점 전시장(가운데) 모습. 맨 아래는 더현대 서울의 자연 친화적 조경. 현대·신세계·롯데백화점 제공

현대백화점이 서울 여의도 파크원에 지난달 개장한 ‘더현대 서울’은 3300㎡(약 1000평)에 달하는 실내 자연공원으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자연 채광이 매장으로 들어오도록 설계한 보이드(Void) 건축 구조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건물 전체를 독특한 아트 스페이스로 구성한 더현대 서울은 개장과 함께 전문 전시공간 2개를 함께 열었다. 우선 6층 복합문화공간 알트원(ALT.1)은 1160㎡(약 350평) 크기로, 200여 점의 예술 작품을 전시할 수 있다. 개관전으로 오는 6월 27일까지 ‘앤디 워홀 : 비기닝 서울’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팝아트 거장 앤디 워홀(1928∼1987)의 회고전으로, 이탈리아와 영국 등에서 순회 전시를 마치고 한국에 왔다.

전시는 6개 섹션을 통해 드로잉, 실크스크린, 콜라주, 사진 등 작품 153점을 선보인다. 전시장 곳곳에선 워홀이 앨범 커버 작업을 했던 ‘벨벳 언더그라운드 & 니코’의 노래가 들려온다. 양명성 현대백화점 영업전략담당 상무는 “알트원은 전문 전시장 수준의 항온·항습 시설도 갖추고 있다”며 “앞으로 고객들에게 수준 높은 문화·공연 콘텐츠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더현대 서울 1층에 마련된 595㎡(약 180평) 규모의 전시공간에서는 영국 ‘스튜디오 스와인’의 작품 이벤트가 펼쳐지고 있다. ‘스프링 포레스트(Spring Forest)’라는 이름의 작품은 나무를 형상화한 조형물에서 비눗방울이 나오도록 해 관객이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현장에서 지켜보니 어린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이 더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현대백화점 판교점은 오는 4월 11일까지 ‘아트 뮤지엄’을 열고 있다. 구본창, 쿠사마 야요이, 칸디다 회퍼 등 국내외 유명 작가 작품 160여 점을 선보이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본점 명품매장 사이에 있는 아트월에서 ‘블라섬 아트페어(Blossom Art fair)’를 펼치고 있다. 다음달 12일까지 진행하는 이번 아트페어는 100만 원대부터 2억5000만 원대까지 다양한 작품 200점을 선보인다. 김창열, 백남준, 이우환, 김종학, 오치균, 이강소, 이왈종, 줄리언 오피, 쿠사마 야요이 등 유명 작가 작품들도 포함돼 있다. 이수빈 신세계미술팀 큐레이터는 “고객들이 작품을 진지하게 관람할 뿐만 아니라 집안 장식과 재테크를 위한 구입 문의를 활발히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해 8월 강남점에 갤러리를 여는 등 아트 스페이스를 늘리고 있다. 기존에 갤러리를 운영해왔던 부산 센텀시티, 대구, 광주 지점 등도 다채로운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이 큐레이터는 “백화점이라는 상업 공간에서 미술품을 통해 독특한 문화 경험을 하니 고객 만족도가 높다”고 전했다.

롯데백화점은 MZ세대를 겨냥한 기획 전시를 시도하고 있다. 본점에서 플라워 아트, 영상, 무빙 오브제 등을 활용한 ‘판타지 드림(Fantasy Dream)’ 전시를 펼치고 있으며, 롯데월드몰은 그라피티스트들의 작품 80점을 모은 전시를 6월 13일까지 진행한다.

롯데백화점은 잠실, 광복(부산), 인천, 광주 지점에서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19년에 개관한 인천터미널점 갤러리는 수준 높은 콘텐츠 전시로 주목을 받고 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나탈리 레테, 밀림보 스튜디오, 제인 마시, 이규태, 석철주 등 국내외 유명작가전을 꾸준히 펼쳐 젊은 관객들에게 인기를 얻었다”고 전했다.

한편, 갤러리아백화점은 명품관 서관 5층에서 나이키, 페리에 등 유명 브랜드와 협업한 박건우 작가의 ‘씨유 앳 식스어클락(SEE YOU AT 6’O CLOCK)’을 다음달 8일까지 전시, 판매한다. 마스킹 테이프를 사용해 기존 오브제를 새롭게 창조한 작품들이다.

백화점의 아트 스페이스는 작품 매매 내용에서도 확대되고 있다. 국내에 들여오지 않았거나 기존 화랑에서 보지 못한 해외 작품을 고객이 요구하면 그것을 해외에서 구입해 전달하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고객이 외국 작가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작품을 본 후에 요청하면, 백화점이 작가 측과 접촉해 중개하는 형식이다.

이에 대해 기존 화랑들은 고객 저변이 넓어진다고 반기면서도 시장 왜곡을 우려하고 있다. 김정숙 한국화랑협회 이사는 “백화점 유통은 전문 지식이 없어도 미술을 쉽게 접하게 해 준다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김 이사는 그러나 “유행을 타거나 인테리어 요소가 강한 작가들만 선호하고 작품성을 고집하는 작가를 외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통 있는 화랑들은 작가들을 오랫동안 지켜보며 그들의 작품성을 끌어올리는 작업에 동행해 왔으나, 백화점 방식은 다르다는 것이다. 최웅철 웅갤러리 대표는 “백화점이 젊은 층 감각에 맞추며 미술품 매매를 확대하는 것은 시대 추세”라면서도 “영업을 넘어서 우리 미술 문화 미래에 대한 책임감이 있느냐는 의문이 있다”고 했다.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