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태연 ‘범 내려온다’

‘아침마당’(KBS 1TV)은 1991년 5월 20일생이다. 요일별로 다채로운데 수요일엔 ‘전국이야기대회-도전 꿈의 무대’가 펼쳐진다. 출연자들은 살아온 이력을 노래 제목처럼 붙이고 등장한다. ‘트로트가 대세니 아침프로까지 따라 하네’. 이렇게 조롱하면 제작진이 서운하다. 트로트 오디션은 여기가 원조다. 임영웅도 거쳐 갔다. 미래의 영웅을 꿈꾸는 무명가수들은 수요일을 기다리며 목청을 가다듬는 중이다.

지난주 수요일(3월 10일)엔 ‘산청 슈퍼스타’ 오인탁(36)의 사연이 흥미로웠다. 경남 산청군 금서면 평촌리 젖소목장 아들은 중2 때 영화 ‘은행나무침대 2’ 촬영팀이 내려온다는 정보를 입수한다. 동네에서 연예인 소리를 듣고 자란 소년은 집에서 기르던 소 100마리를 이끌고 새벽부터 찻길을 점령한다. 산청의 슈퍼스타를 알아보고 감독이 명함이라도 건네길 기대했는데 예상은 빗나갔다. 일행은 소들이 이동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말 한마디 없이 목적지로 향하더란다. 스토리에 맞는 노래를 일부러 고른 걸까. 그날 오인탁의 선곡은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원곡 임희숙)였다. ‘너를 보내는 들판에 마른 바람이 슬프고/ 내가 돌아선 하늘엔 살빛 낮달이 슬퍼라’.

가슴마다 소가 있고 범이 있다. ‘내 하나의 사람’을 만나러 소를 끌고 길을 나선 소년은 해 질 무렵에서야 안다. ‘오래도록 잊었던 눈물이 솟고/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 그제야 어렴풋이 실체가 보인다. 내 하나의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음을. ‘가거라 사람아/ 세월을 따라/ 모두가 걸어가는 쓸쓸한 그 길로’.

음악동네는 길마다 ‘바람길’이다. ‘길을 걷는다/ 끝이 없는 이 길/ 걷다가 울다가/ 서러워서 웃는다’(장윤정 ‘바람길’ 중). 주인이 노래를 만나기도 하지만 노래가 주인을 만나기도 한다. ‘바람길’은 장윤정이 발표, 아니 취입만 하고 무대에서는 부르지 않았던 노래다. 이 노래를 살린 건 국악소녀 김태연이다. 아홉 살 인생에도 바람의 기억이 남았던 걸까.

‘미스트롯2’ 최연소 톱7에 오른 김태연은 별명이 두 개다. 판소리를 사랑해서 ‘김판사’, ‘범 내려온다’를 힘차게 불러 ‘아기호랑이’다. 집안 내력이 범상치 않다. 태교음악이 판소리였고 장구와 북이 장난감이었다. 여섯 살 때부터 박정아 명창에게 소리를 배웠다. 부모와 떨어져 사는 시간이 길다 보니 기다림, 그리움이 소녀를 범처럼 키웠나 보다.

‘범 내려온다’는 우리 전통음악과 서양의 록·댄스음악을 결합한 독특한 노래다. 원곡자 이날치는 발성의 전환이 아니라 발상의 전환으로 성공했다. 넷플릭스 공동창업자 마크 랜돌프가 자신의 사업 아이디어를 아내에게 말하자 들었던 말이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That Will Never Work)다. 열지 않아서 그렇지 국악은 무진장 보물창고다.

A급, B급은 수준의 차이가 아니라 취향의 차이다. 방탄소년단이 2관왕에 오른 제18회 한국대중음악상시상식(2월 28일)에서 이날치는 3관왕에 올랐고 ‘범 내려온다’는 ‘최우수 모던록 노래’로 뽑혔다. 이 상은 인기순위, 방송출연 횟수, 판매량이 아니라 음악적 성취에 초점을 맞춰 선정하는 상으로 유명하다. “우리가 돈이 없지, 실력이 없냐”. 이런 자부심으로 18년째 버텨왔다. 날치(flying fish)의 기백과도 닮았다. 도심의 ‘다이너마이트’도 인정하고 산에서 내려오는 범에게도 악수를 청하니 참신하고 든든하다. 방탄소년단, 임영웅, 이날치가 두루 살아야 음악동네가 넓어진다.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이미지 크게보기 주철환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