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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형 카이스트 신임총장

“전공 공부 10% 줄이고 인성·리더십 기르는 시간으로
어떤 인생 살 것인지, 사회공헌 어떻게 할지 성찰해야”
해외 파트너십 확대… 카이스트 모델 해외로 수출계획

‘창업의 대부’ ‘괴짜 교수’.

지난 8일 취임식을 가진 카이스트의 이광형 신임 총장을 수식하는 말이다. 이 총장은 지난 2월 18일 열린 임시이사회에서 카이스트의 제17대 총장으로 선임된 뒤 교육부 장관의 동의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의 승인을 거쳐 총장으로 확정됐다. 임기는 지난 2월 23일부터 시작해 4년간이다. ‘괴짜 교수’에서 ‘괴짜 총장’이 된 이 총장은 취임식에서도 남다른 면모를 보였다. 학생들에게 공부를 많이 하지 말라고 한 것. 그는 이날 “우리 카이스트의 문제점은 학생들이 공부를 너무 많이 한다는 것”이라고 말해 주변을 깜짝 놀라게 했다. 학업을 중시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다. 실력과 더불어 ‘인성’을 겸비한 인재를 기르겠다는 포부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는 “이제 공부는 조금하고, 특히 전공공부는 10% 덜하고, 그 시간에 인성과 리더십을 기르는 시간으로 할애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인성과 리더십이 사람에 대한 ‘신뢰’를 높인다고 믿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괴짜 교수’… ‘질문의 힘’ 강조 = 이 총장은 1990년대 TV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 존재를 드러낸 적이 있다. SBS 드라마 ‘카이스트’에 등장했던 박기훈 교수(안정훈 분)가 그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다. 학생들에게 자신의 컴퓨터를 해킹하라는 교수. 절대 풀 수 없는 문제를 만들라며 시험 문제로 출제하는 교수. 연구실에 TV를 거꾸로 설치하고, 짝짝이 신발 끈을 매고 다니는 교수. 모두가 이 총장의 교수 시절에서 가져온 모습이다. 드라마 카이스트를 집필한 송지나 작가는 고정관념을 벗어난 행동과 어록을 보며, 박기훈 교수라는 드라마 대표 캐릭터를 구상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뒤집어 보는 이 총장의 생각은 집무실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그의 집무실에는 대학 조직도가 거꾸로 걸려있다. 섬겨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하겠다는 취지다. 이런 태도는 이 총장의 교수법에도 투영돼 그는 학생들에게 무엇인가를 주입하려는 교수가 아닌, 학생들이 스스로 질문하도록 하는 교수로 유명했다. 이 총장은 취임사에서도 “다양한 세상을 보여주고 ‘질문’이 나오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총장이 강조하는 ‘질문’은 수업시간 공부 내용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이 총장은 “질문한다는 것이 막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라며 “그 질문은 꼭 학과 수업 시간에 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질문’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등 스스로에 대한 성찰도 포함된다. 이런 질문을 스스로 끊임없이 제기해 어떤 진로를 선택할 것인지,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 어떻게 사회에 공헌할 것인지 답을 내야 한다는 설명이다.

◇질문이 최고 덕목, 연구 혁신 위해 실패연구소 설립 = 이런 바탕에서 이 총장은 신(新)문화전략으로 ‘QAIST’ 전략을 내세웠다. 이 가운데 첫 번째 이니셜인 ‘Q’는 그의 교육 방침으로 질문(Question)을 의미한다. “질문을 최고의 덕목으로 강조하겠다”고 밝힌 그는 학생들에게서 질문이 나오게 하도록 다양한 산업·연구 현장의 인턴 생활을 장려하고, 독서를 통해 간접경험을 하도록 돕겠다고 밝혔다. 새로운 것을 접하면 당연히 질문이 나올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이 총장은 직간접 체험으로 넓은 세상을 본 학생들은 큰 꿈을 갖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꿈을 갖게 되면 가슴이 뛰어 도전하게 되고, 그 꿈을 생각하면 친구들과 협동을 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학생들이 꿈을 갖게 하도록 그는 총장상으로 ‘질문왕’ ‘독서왕’ ‘도전왕’ 상을 수여할 계획이다. 이스라엘의 ‘후츠파(Chutzpah·담대한 도전과 도발)’ 정신이 자리 잡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Q에 이은 ‘A’는 연구혁신(Advanced research)을 뜻한다. 이 총장은 “남과 경쟁하지 않고, 남과 다름에서 빛을 발하는 분위기를 만들겠다”며 연구혁신을 내세웠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차기 인공지능(Post AI)’ 연구다. 모두가 AI 연구에 집중하고 있을 때, 이 총장은 “AI가 일반화돼 있을 그 이후 10∼20년을 준비하는 연구를 시작하겠다”고 밝힌다. 유행을 따라 남들이 하는 연구를 하기보다는, 그 ‘다음’을 찾아 연구하도록 장려한다는 전략이다.

이 총장은 이 같은 연구혁신을 과거에도 이룬 바 있다. 그는 2000년대 모두가 정보기술(IT)에 집중하고 있을 때, 융합시대를 예견했다. IT와 생명공학기술(BT)을 결합한 ‘바이오 및 뇌공학과’를 세계 대학 최초로 개설한 것도 이 총장이다. 2013년 그가 설립을 주도한 문술미래전략대학원도 미래학 석·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국내 유일의 정규 학위 과정이다.

연구혁신을 위해 새로운 길을 갈 때는 항상 실패의 위험이 도사린다. 이 총장은 이런 위험을 덜어주기 위해 “두려움 없이 도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실패연구소’를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실패를 ‘교훈을 주는 성공’으로 재해석해 재도전의 용기를 주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경쟁 연구보다 최초 연구에 더 가치를 두겠다”는 것이 이 총장의 취임 일성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이 지난 8일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 본원 대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마치고 전진의 의미를 담아 북을 치고 있다. 카이스트 제공

◇창업의 대부, ‘기술사업화’ 파격 지원 = QAIST의 ‘I’는 국제화(Internationalization)다. 단순히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을 많이 들인다는 뜻이 아니라 이 총장은 “내부적 국제화와 외부적 국제화로 나눠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내부적 국제화는 외국인과 한국인 구성원이 캠퍼스 내에서 조화롭게 다양성을 꽃피우는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다. 언어와 문화적 장벽이 낮은 글로벌 캠퍼스를 구축하고 연구실마다 1명 이상의 외국인 학생을 수용하는 1랩(연구실) 1외국인 학생 운동이 제시됐다.

외부적 국제화는 해외 파트너십을 확대하고, 카이스트의 모델을 해외로 수출하는 것이다. 해외 국제 캠퍼스를 통해 세계 주요 연구거점 지역을 기반으로 카이스트 해외 연구·개발(R&D) 센터를 미국 보스턴과 실리콘밸리 등에 구축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또 카이스트가 국제공동연구를 추진해 위상을 높이고 개발도상국의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카이스트 모델을 케냐, 이집트, 터키 등에도 수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 같은 바탕에서 이 총장이 이루고자 하는 것은 창업의 대부에 걸맞은 ‘기술사업화’(Start-up)다. QAIST 전략의 ‘S’에 해당하는 기술사업화는 “한 연구실에 최소 벤처기업 한 개는 창업하게 하겠다”는 이 총장의 포부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는 “기술사업화는 카이스트가 추구하는, 질문하는 글로벌 창의 리더 교육과 문제를 정의하는 연구혁신의 결과를 어떻게 사회적 가치 창출로 연결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이라며 “1랩 1벤처 운동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교내 창업기업을 외부 자본시장과 연결하는 등 과하다고 평가될 정도로 파격적인 창업지원제도를 도입하겠다는 목표다. 또 10년 내 연간 1000억 원의 기술료 수입 달성을 목표로 기술사업화 부서를 민영화하겠다고도 밝혔다.

QAIST 전략의 마지막은 ‘신뢰(Trust)’다. 신뢰할 수 있는 인재 양성은 물론, 카이스트의 재정도 신뢰할 수 있도록 운영해 ‘신뢰기반의 경영혁신’을 이룬다는 전략이다. 이 총장이 취임사에서 ‘인성’을 강조한 것은 결국 신뢰 구축으로 연결된다. 카이스트가 길러낸 인재가 리더십, 청렴성, 봉사정신 등에서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라는 평가를 받아야 “카이스트 졸업생은 실력으로나 인성으로나 믿을 수 있다”는 신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총장은 “그동안 섬기는 리더십으로 동료들과 함께 꿈을 현실로 구현하는 일을 해왔다고 생각한다”며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카이스트에 새롭고 따뜻한 변화를 일으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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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서울 출생 △서울사대부설고등학교 △서울대 산업공학 전공 △카이스트 대학원 석사 △프랑스 리옹 응용과학원(INSA) 박사 △카이스트 교수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회원 △미국 스탠퍼드대 SRI 초빙교수 △한국공학한림원 회원 △국방부 국방개혁자문위원 △특허법원 사법행정자문위원 △국회 특허허브국가 추진위원회 공동대표 △대통령 직속 지식재산위원회 위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초연구추진위원회 위원장 △국회 미래연구원 이사 △대통령 직속 교육회의 위원 △카이스트 총장

정선형 기자 linear@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