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재와 등번호

배우 박광재는 프로농구 선수 시절 등번호가 여러 개였다. 등번호는 선수에겐 또 다른 이름. 그래서 쉽게 바꾸지 않는데, 박광재는 예외였다. 선수라면 등번호에 신경을 쓴다. 트레이드 등으로 팀을 옮길 때도 양해를 구하고 자신의 등번호를 유지하는 게 일반적. 그런데 박광재는 시즌 도중 등번호를 변경하기도 했다.

박광재는 연세대 재학 시절엔 32번이었지만, 2003년 프로인 LG에 입단하며 41번으로 교체했다. 박광재는 롤모델이었던 미국프로농구(NBA)의 전설적 스타 더크 노비츠키를 존경하는 의미에서 41번에 애정을 쏟았다. 박광재는 경복고 시절부터 3점슛을 잘 던지는 센터였다. 213㎝의 노비츠키는 빅맨치고는 슛이 매우 뛰어났다. 노비츠키는 통산 3점슛 1982개를 남겼다. 노비츠키로 인해 장신 슈터라는 트렌드가 탄생했고, 그는 2006년 올스타전 3점슛 경연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노비츠키는 210㎝ 이상의 선수 중 유일하게 3점슛 톱 20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41번 박광재는 이름을 알릴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박광재는 부진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등번호 변경을 선택했다. 의미도 있었다. LG 시절에는 LG텔레콤의 휴대전화 번호가 019로 시작된다는 점에서 19번을 달았다. 2009∼2010시즌 트레이드로 오리온스(현 오리온)로 이적하면서 9번이 됐다. “번호가 두 자리라 무거워 보이니, 한 자리 번호를 한 번 달아보라”는 주변의 조언 때문이었다. 박광재의 현역 마지막 팀은 전자랜드였고 박광재는 2010∼2012년 연세대 시절 등번호였던 32로 바꿨다.

박광재는 등번호를 자주 바꿨지만 효과는 크지 않았고, 무명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유니폼을 벗었다. 박광재는 “프로에 와서 잘 안 풀려 마음고생이 심했고 등번호를 자주 변경했지만 생각만큼 되지 않았다”면서 “여러 개의 등번호가 이제는 추억이 됐다”고 말했다. 박광재는 “배우는 등번호가 없다는 게 농구보다 나은 점”이라면서 “연기라는 영역에선 등번호가 아닌 이름으로 팬들의 뇌리를 파고들겠다”고 다짐했다.

정세영 기자 niners@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