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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식의 과학으로 본 마음 - (18) 인간은 善한가

성선설의 ‘품위 가설’ 성악설의 ‘의지 가설’… 뇌 영상으로 검증했지만 모두 정확하진 않아
선한 사람은 고민하지 않게, 악한 사람은 고민하게 만드는 사회가 바른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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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은 선할까? 악할까? 아니면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중립적이거나, 경험을 통해 습득되는 것일까? 인간의 본성에 관해서는 우리가 학창시절 배웠던 맹자와 순자의 성선설과 성악설을 비롯해 동서양의 많은 철학자와 종교인에게, 그리고 문학과 예술에서 단골 주제로 다뤄져 왔다. 비단 철학자나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일반 대중 역시 인간의 본성에 관한 나름대로 생각과 근거들을 지니고 있다.

인간의 도덕적 행동과 판단에 대해서도 심리학자들은 다양한 경험적 관찰과 과학적 실험을 통해 연구를 진행해 왔다. 일반적으로 심리학자들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섣불리 규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선하거나 혹은 악하다고 판단하고 또 실제로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관심이 있으며,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이유나 기전은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는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길에서 강도를 만나 가진 것을 빼앗기고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데 그 길로 제사장이나 레위인(당시 종교 지도층)이 지나가며 봤지만 도와주지 않았고, 결국 어떤 사마리아인(당시 사회적으로 배척받던 사람)이 그 사람을 정성껏 도와줬다는 이야기다. 과연 누가 우리의 이웃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성경에 기록돼 있다. 이 이야기와 관련해 1973년 미국 프린스턴대의 두 심리학자 존 달리(John darley)와 대니얼 뱃슨(Daniel Batson)이 재미있는 실험을 했는데, 신학생들을 무작위로 두 집단으로 나눴다. 한 집단에게는 성경의 ‘선한 사마리아인’과 관련된 자신의 생각을, 다른 집단에게는 신학생들이 잘할 수 있는 일이나 직업에 대한 생각을 얘기해 달라고 요청했고, 이를 녹음하기 위해 다른 건물에 있는 사무실로 이동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동 요청을 하면서, 어떤 신학생들에게는 시간이 없으니 서둘러 가라고 지시했고 어떤 신학생들에게는 시간 여유가 조금 있으니 일단 이동한 후 잠시 기다렸다가 설교하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연구자들은 각 신학생의 이동 경로에, 쓰러져서 호흡 곤란을 겪는 한 사람(신학생들은 모르는 연구 조력자)을 배치해 놨다. 연구자들은 어떤 조건의 신학생들이 곤경에 빠진 사람을 도와주는지 알아보려고 한 것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해 생각하도록 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간에 차이가 있었을까? 실험 결과는, 이 두 집단 간에 아무런 차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과 관련된 설교를 할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이타적 행동을 실제로 하는 것에는 별 상관이 없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대신 시간적 여유가 있던 사람들은 쓰러진 사람에게 63%가 도움을 준 반면, 서둘러 이동하도록 한 사람들은 10%만이 도움을 줬다. (시간적 여유가 있거나 없는) 상황이 그 사람을 ‘선한 사람’으로도,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도 만드는 것이다.

앞으로 목회자나 신학자가 될 사람이라고 해서 일반인보다 곤경에 빠진 사람을 더 도와주고 더 도덕적인 행동을 할 것이라 기대했다면 여러분은 실망할지도 모른다. 더욱이 이타적 행동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사람이라고 이타적 행동을 많이 할 것이라는 기대도 접어두자. 우리는 이미 법과 윤리를 소리 높여 외치던 지도층 가운데 우리에게 실망과 충격을 준 사례가 적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

실제로 많은 심리학 연구는, 어떤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 이유를 그 사람의 내적인 기질이나 성격, 인격,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일종의 내적 귀인 오류를 범하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누군가 성공하거나 실패했다면, 그 사람의 성품이나 능력이 좋거나 나쁘다고 쉽게 판단해 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이 선한지 악한지와 같은 인성 문제에 오래 집착해 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많은 행동은 단순한 운이나 환경, 그리고 매 순간 처한 상황이나 상태에 의해 큰 영향을 받고 있음을 많은 연구는 보여주고 있다.

앞서 ‘선한 사마리아인’ 실험은 누군가를 도와주는 이타적 행동과 관련된 하나의 실험이고, 우리 대부분은 이타적 행동을 ‘선한’ 것으로 생각한다. 눈앞에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이타적 행동은 아니라도, 부정한 방법으로 이득을 취할 수 있음에도 욕심을 부리지 않고 정직하게 행동하는 것 역시 우리는 ‘선한’ 것으로 생각한다.

여러분은 납세 의무나 병역 의무를 불법적인 방법으로 피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는가? 영화나 서적을 불법으로 복제하거나 전송받을 수 있다면? 부정행위 등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시험 성적을 높일 수 있다면? 거짓말을 해서 이득을 얻을 수 있을 때 그렇게 하겠는가?

큰 이득이 기대될 때 우리 뇌의 중격측좌핵(nucleus accumbens)이라는 영역이 활성화되는데, 이 영역이 상대적으로 더 활성화되면 속임(cheating)과 같은 부정직한 행동이 나타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 2014년 아베(Abe)와 그린(Greene)의 연구에서 밝혀진 바 있다. 어떤 사람이 이 영역에서 상대적으로 더 큰 활성화를 보이게 되는지는 더 연구가 필요하지만, 욕심이 과하면 죄악을 낳는다는 신경학적 기전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법과 윤리, 규범을 잘 지키며 ‘선한 사람’의 이미지를 유지하려는 생각과 부정한 방법으로 이득을 보려는 유혹 사이에서 갈등을 겪기도 한다. 네덜란드의 세바스티안 스피어(Sebastian Speer)와 그의 동료들이 2020년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사람들의 정직(혹은 부정)과 인지적 통제 간의 관계를 행동실험과 뇌의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기법을 이용해 살펴본 것이다.

구체적인 실험 절차를 설명하기에 앞서, 정직과 관련된 두 개의 대표적 가설이 있는데, 하나는 품위(Grace) 가설이고, 다른 하나는 의지(Will) 가설이다. 품위 가설은, 성선설과 유사하게, 사람들은 원래 정직한 본성이 있어서 정직한 것은 자동적이고 쉬운 것이며, 때때로 부정한 방법으로 이득을 취하려 할 때는 정직한 본성을 억누르는 인지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가설이다. 이와는 정반대로, 의지 가설은, 성악설과 유사한 것으로, 사람들은 본래 이기적이고 부정직해서, 정직하려면 유혹에 저항하는 노력 등 인지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그동안 다양한 경험적 연구가 이 가설들을 검증하기 위해 수행됐으나 어떤 연구들은 품위 가설을, 또 다른 연구들은 의지 가설을 지지하는, 모순된 결과가 나왔다. 가령, 이전 연구들을 보면, 사람들이 거짓말을 할 때보다 진실을 얘기할 때 더 빠르게 반응하는 것과 시간 압박이 있거나 인지적인 부담이 있을 때 거짓말을 덜 하는 것을 발견한 연구(품위 가설 지지)도 있지만, 반대로 잠을 못 자게 하거나 인지적 자원이 고갈된 상태에서 부정직한 행동이 더 유발되는 것을 보이는 연구(의지 가설 지지)도 있다. 이런 모순적 연구결과가 나타난 이유 중 하나는 이들이 연구에서 사용한 과제와 실험 방법 차이 때문일 수 있으며, 특히 대부분의 이전 연구들은 실험실 상황에서 집단 자료만을 분석해 어떤 시행에서 누가 거짓말을 하고 안 하고를 특정하기 어려웠다는 한계점을 지니고 있었다.

스피어와 그의 동료들이 수행한 연구에서는 특정 시행에서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고 이들이 실험에서 얼마나 속였는지, 그리고 이들이 속이거나 혹은 그렇지 않을 때 뇌에서 일어나는 인지적 통제와 관련된 변화를 측정했다. 이들의 실험을 간단하게 설명해 보겠다. 우선 실험 참가자에게는 인간의 시각 탐색 과정을 알아보기 위한 연구라고 소개한 후, 화면에 그림 한 쌍이 나오면 이 그림에서 다른 곳 3곳을 찾도록 요구했다(다른 그림 찾기 과제). 한 쌍의 같은 그림 중 하나의 그림에 어떤 사물을 지우거나 혹은 추가하기도 하고 색을 바꾸는 방식으로 다른 곳을 만들었는데, 참가자에게는 한 쌍의 그림에 다른 곳이 3곳이 있으니 그것을 모두 찾으면 ‘예스(yes)’ 단추를 누르라고 지시했다. 각 참가자에게 총 144개의 그림 쌍을 순차적으로 제시했는데, 이들 중 절반(72개 쌍)은 실제로 다른 곳이 3개 있었지만, 나머지 72개의 그림 쌍은 다른 곳이 한 개 혹은 두 개밖에 없었다(참가자들은 모든 그림 쌍에 다른 곳이 3개 있다고 믿고 있었다). 각 그림 쌍은 6초 동안 제시됐고, 매 시행마다 참가자가 다른 곳 3곳을 모두 찾았다고 보고하면 상금을 줬다.

정직하게 반응한다면 참가자들은 절반의 시행에서만 ‘예스’ 반응을 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이 실험에서 참가자들에게 다른 곳 3곳이 어디인지를 묻지 않기 때문에 참가자들은 더 큰 상금을 받기 위해 나머지 절반의 시행에서도 얼마든지 ‘예스’ 반응(이 경우 거짓말)을 할 수 있었다. 연구자들은 한두 곳만 다른 그림 쌍에서 어떤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지 혹은 정직하게 대답하는지 알 수 있었고, 이때 이들의 뇌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뇌 영상을 통해 관찰했다.

실험 결과, 참가자 40명의 속임 행동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었다. 총 72번의 속일 수 있는 시행에서 한두 번만 속인 참가자(정직한 참가자)도 있었던 반면 한두 번만 정직하게 반응한 참가자(부정직한 참가자)도 있었다. 상금을 받기 위해 사람들은 평균 26%의 거짓말을 했지만, 거짓 반응을 한 정도는 사람마다 아주 낮은 정도부터 아주 높은 정도까지 골고루 분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의 재미있는 발견은, 우리 뇌에서 인지 통제와 관련이 있는 전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과 하전두회(inferior frontal gyrus)의 활성화가 정직한 사람과 부정직한 사람에게 각기 다른 방식으로 표출된다는 점이다. 이 영역이 활성화될 때 평소에 정직한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게 되고, 평소에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들은 반대로 정직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정직한 사람이 거짓말을 할 때나 사기꾼이 정직한 언행을 하는 것은 인지적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비록 최근 연구가 정직과 속임 행동만을 대상으로 측정했지만, 이를 선과 악의 차원으로 확장해 생각할 때, 악한 사람이 선한 행동을 하게 만드는 곳과, 선한 사람이 악한 행동을 하게 만드는 곳이 우리 뇌의 같은 곳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 ‘선한’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 선한 사람은 고민하지 않게, 악한 사람은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 좋다. 선한 사람들이 납세나 병역을 고민하게 되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 용어설명

품위(Grace)가설-의지(Will)가설 : 정직과 관련된 두 개의 대표적 가설. 품위 가설은 사람은 원래 정직한 본성이 있어, 부정한 방법으로 이득을 취하려 할 때 정직한 본성을 억누르는 인지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가설이다. 반대로 의지 가설은 사람은 본래 이기적이고 부정직해서, 정직하려면 유혹에 저항하는 노력 등 인지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