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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윤의 ‘소우주’

‘성북동 비둘기’로 유명한 시인 김광섭의 작품 ‘저녁에’는 우주 이야기로 시작한다.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여기에 곡을 붙여 형제듀오 유심초가 노래했는데 제목은 시의 마지막 구절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81)다. 멜로디와 리듬은 경쾌하지만 스타와 팬의 관계, 혹은 멀어진 친구를 연상하고 곡을 들으면 왠지 모를 비장함에 빠져든다.

오늘(2월 8일) 저녁에 응원하는 사람이 ‘싱어게인’(JTBC)에 나온다며 단체방의 지인이 들떠 있다. 그에게 이 시(‘저녁에’)를 들려줬더니 왠지 기분이 가라앉는단다. 혹시 중간의 이 부분 때문은 아닐까.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우연히도 그가 응원하는 가수가 오디션 최종무대에 오르기 직전 불렀던 노래도 우주와 관련된 내용이다. ‘가장 깊은 밤에 더 빛나는 별빛/ 밤이 깊을수록 더 빛나는 별빛’(방탄소년단 ‘소우주’ 중). 소재는 비슷한데 스케일은 딴판이다. ‘한 사람에 하나의 역사/ 한 사람에 하나의 별/70억 개의 빛으로 빛나는/70억 가지의 world’.

이미지 크게보기 주철환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2011년 MBC대학가요제에 나와 ‘우리의 목소리를 멈출 수는 없을 걸/ 우리를 막을 수는 없을 걸’이라며 무대를 들썩일 때만 해도 이승윤(사진)은 귀여운 악동(惡童, 樂童)에 불과했다. 음악동네에 그런 애(?)가 있는지 도무지 몰랐다. 노래 제목조차 ‘없을 걸’이었다. 그런데 제목과는 달랐다. 그는 없어지지 않았다. 그때는 참가번호 3번이었는데 10년이 지난 후 그는 10배가 돼 나타났다. ‘싱어게인’ 30호 이승윤. 톱10에 진출하더니 급기야 톱6까지 올랐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비슷한 일들이 음악동네에서 이따금 일어난다. 1991년 MBC대학가요제. 조용히 모서리에 서서 ‘긴 이별’이라는 발라드를 애잔하게 부른 청년이 있었다. 세상은 그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귀담아듣지도 않았다. 6년 후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로 ‘가요 톱10’(KBS2TV)에 나타난 김경호는 도무지 다른 사람이었다. 머리를 흔들고 샤우팅하는 격정적인 모습에서 수줍은 대학생의 앳됨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런 사람들에게서 나는 일관성과 유연성을 동시에 본다. 꿈은 일관되지만 스타일은 바꾼다. 때에 따라, 곡에 따라, 무대에 따라 그들은 180도 달라진다. 하지만 변신은 있어도 변심은 없다.

이제 음악동네에서 이승윤은 유명한 사람이다. ‘세상의 모서리/ 구부정하게 커버린/ 골칫거리 아웃사이더/ 걸음걸이, 옷차림, 이어폰 너머 플레이리스트/ 음악까지 다 마이너’(아이유 ‘셀러브리티’ 중).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인기인이 되면 기분이 어떨까. ‘비치는 새 태양/ 참새의 첫울음/ 이 모든 것은 나의 새 세상’(한대수 ‘하룻밤’ 중). 그러나 하루아침에 달라진 것들은 하룻저녁에 사라질 수도 있다. ‘그렇게 사랑했던 추억마저 잊어달라며/ 사랑은 잔인하게 떠나가네요’(김범수 ‘하루’ 중).

오늘 저녁 6개의 별이 ‘싱어게인’ 무대를 밝힐 것이다. ‘반짝이는 별빛들/ 깜빡이는 불 켜진 건물/ 우린 빛나고 있네/ 각자의 방 각자의 별에서/ 어떤 빛은 야망/ 어떤 빛은 방황/ 사람들의 불빛들/ 모두 소중한 하나’(방탄소년단 ‘소우주’ 중). 그러나 무대는 끝이어도 음악인생의 파이널은 아니다.

그들에게 내가 지은 ‘파이널’ 3행시를 선물하고 싶다. ‘파도가 몰아치는/ 이 세상 끝까지/ 널 포기하지 마’.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