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수신료 인상을 다시 추진하고 있습니다. 2007, 2010, 2013년에 이어 4번째죠. 앞선 시도 모두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폐기됐습니다. 반대 여론이 들불처럼 번졌고, 표심(票心)을 의식해 여야 모두 눈치를 살폈기 때문이죠.

KBS는 지난달 27일 수신료 인상안을 이사회에 상정했습니다. 이날 KBS는 양승동 사장의 입장문을 각 언론사에 배포했죠. 그중 이 문장이 유독 눈에 들어왔습니다.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쇼’를 통해 고통의 터널을 지나는 국민에게 위로와 통합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추석, 15년 만에 TV에 출연해 건재함을 과시하며 ‘테스형’ 열풍을 일으킨 가수 나훈아의 공연을 가리키죠. ‘KBS가 나훈아를 섭외해 위로를 전했고, 수신료를 인상해야 또 이런 공연을 준비할 수 있다’ 정도의 뉘앙스를 풍긴 겁니다.

코로나19로 고통받는 국민을 바라보며 “가만히 있으면 후회할 것 같아서 꼭 공연을 해야 했다”고 말한 나훈아는 “역사책을 보면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며 위정자(爲政者)들의 위선을 꾸짖기도 했죠. 나훈아의 여러 어록 속에 묻히기는 했으나, 그는 당시 KBS를 향해서도 한마디 던졌습니다. “KBS가 국민의 소리를 듣고 같은 소리를 내는, 여기저기 눈치 안 보는, 정말 국민을 위한 방송이 됐으면 좋겠다”라고요.

당시 나훈아가 들려준 ‘테스형’의 세상을 향한 일침의 여파는 컸습니다. 야권은 “여권을 향한 나훈아의 충고”라고 분석했고, 여권은 “야권의 아전인수식 해석”이라고 맞불을 놨죠.

그런데 지금 와서 보면, KBS야말로 나훈아의 의도를 곡해한 아전인수식 해석을 수신료 인상안의 근거로 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당시 나훈아는 “그 돈으로 더 좋은 공연 만들라”며 출연료 한 푼 받지 않았죠. 하지만 KBS는 그렇게 아낀 돈으로 억대 연봉을 받는 무보직자 1500명을 양산했습니다. 그러고도 대규모 적자를 기록해 수신료를 더 걷게 해달라며 국민의 얇디얇은 주머니를 노려보고 있는 모양새죠.

공연 당시 나훈아는 “모르긴 몰라도 KBS는 거듭날 것”이라는 당부이자 바람을 전했습니다. 그때 그는 정말 몰랐을 겁니다. 공연이 끝나고 불과 4개월 후, 강한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KBS가 수신료 인상을 강행할 것이란 살풍경을요. 그래서 그의 노래 속 가사가 또 절로 나옵니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