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황기철 신임 국가보훈처장은 27일 서울 용산구 서울보훈지청 집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보훈이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로 나아가는 ‘든든한 보훈’ ‘젊은 보훈’을 지향하고, ‘국민통합’과 ‘국민 애국심’ 함양에 기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동훈 기자

취임 한달 황기철 신임 보훈처장

“유공자 자부심·명예·보람 갖게
국민은 존경·사랑 보낼 수 있게
보훈 정신 퍼져 나가도록 노력

6·25 참전국 보훈부 장관 초청
연말 국제평화 콘퍼런스 개최
정전 70주년 공동 사업도 추진

독립유공자 심사기준 등 개선
포상 못받는 사례 없도록 할 것”

“국가 유공자는 나라를 위해 헌신했다는 자부심과 명예, 보람을 갖도록 하고, 국민은 이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보낼 수 있는 보훈 정신이 퍼져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던 석해균 선장 등 삼호주얼리호 선원들을 성공적으로 구출한 ‘아덴만 여명 작전의 주역’ 황기철(64) 신임 국가보훈처장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더 큰 미래로 나가는 보훈처를 만들겠다”며 이 같은 포부를 밝혔다. 해군참모총장 출신인 황 처장은 올해 보훈처 창설 60주년을 맞아 ‘보훈이 미래다’라는 인식이 사회 곳곳에 확산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을 펼쳐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황 처장은 “지난해 6·25전쟁에 참전한 22개 유엔 참전국가에 마스크를 보낸 사업이 국제사회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며 “올해도 국제 평화 콘퍼런스 개최 등 국제 협력 사업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오는 31일로 취임 1개월을 맞이하는 황 처장을 27일 서울 용산구 서울보훈지청 집무실에서 만났다.

―황 처장의 새로운 보훈 철학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지금 같은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독립운동과 6·25전쟁을 통해 나라를 지킨 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군부독재 시절 민주화운동을 했던 분들도 커다란 희생을 치렀습니다. 이런 자랑스러운 역사를 일궈낸 분들을 정부와 국민이 정성껏 모시고 합당한 보상과 예우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이는 더 나은 대한민국을 열어가는 토대이자 밑거름입니다. 국민과 미래 세대가 국가유공자를 본받고 그 정신을 계승해 애국심을 고양하는 것, 이를 위해 교육하는 것 또한 보훈처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훈의 세 영역인 독립·호국·민주는 ‘국가를 위한 헌신’이란 하나의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때로는 이 가치들이 충돌하기도 합니다.

“독립·호국·민주의 가치 또한 이를 바라보는 분들의 시각에 따라 달리 해석할 수는 있겠지만, ‘국가를 위한 희생과 헌신’이란 하나의 가치로 귀결되는 것이기에 이 가치들이 충돌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무척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이러한 가치를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감을 갖고 정책을 수립해 실행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유공자를 선양·예우해야 하는 우리 사회의 공감대입니다. 독립·호국·민주의 가치가 각각의 시기와 형태는 다르지만 모두가 ‘애국’이고 ‘국가를 위한 헌신’이라는 점을 국민에게 더 널리 알리고 교육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보훈의 중요한 역할인 ‘국민통합’과 ‘국민 애국심’ 함양을 위한 구상을 갖고 있는지요.

“취임 후 많은 분을 만나 얘기를 나누면서 ‘보훈’에 대해서는 모두 같은 생각을 갖고있고, 여러 주문과 함께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앞으로도 보훈이 ‘국민통합’과 ‘국민 애국심’ 함양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잘 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올해 추진할 ‘보훈 외교’의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요.

“6·25전쟁 70주년이던 지난해 우리 보훈 외교가 국제사회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특히 유엔 참전용사 마스크 지원 등 6·25전쟁 70주년 사업을 통해 보훈 외교는 유엔 참전국과 참전용사들에게는 70년이 지났음에도 대한민국이 잊지 않고 보답하고 있다는 ‘감동’을, 우리 국민에게는 ‘자긍심’을 주는 동시에 대한민국의 보훈, 이른바 ‘K-보훈’의 위상을 높이는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 올해는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우리의 대표적인 공공외교 자산인 보훈을 통해 대한민국의 국격을 한층 높일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을 적극 펼쳐 나가겠습니다.”

―어떤 사업을 준비하고 있나요.

“지난해 11월 유엔 참전국 대표회의에서 채택된 공동선언문의 세부 실행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올해 말 6·25전쟁 참전국 보훈부 장관 초청 ‘국제평화 콘퍼런스’를 개최하고, 2023년 정전 70주년 계기 공동 사업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참전용사를 대상으로 했던 재방한 초청 대상을 그 후손은 물론 전후 한국에서 근무했던 유엔사 예비역 장병들까지 확대하고, 참전국 미래세대와 6·25전쟁의 의미를 공유하기 위한 참전국별 교육자료 제작도 해 나가겠습니다.”

―5·18민주유공자법 개정에 따라 5·18 3개 단체에 대한 공법단체 설립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5·18 공법단체 설립을 위해 많은 분이 애써 오셨지만, 번번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다가 이번 21대 국회에 와서 공법단체를 설립하는 법안이 의결돼 지난 5일 법안이 공포됐습니다. 5·18민주유공자가 보훈 대상으로 편입된 지 18년 만에 매우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현재 기존 5·18 관련 3개 단체 중심으로 설립준비위원회 구성을 위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으며 앞으로 공법단체 설립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모든 행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고령의 국가유공자를 위한 보훈 의료 대책과 함께 보훈 가족과 국민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제가 취임하자마자 보훈병원을 찾은 이유는, 서울중앙보훈병원과 대구·대전 보훈병원이 ‘코로나19 전담 병상’을 운영하고 있어, 의료진과 직원들의 노고와 피로도가 높은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어렵지만 힘을 내시라고 격려차 방문했습니다. 올해 광주·부산보훈병원 재활센터와 광주요양병원을 완공하는 등 의료·요양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확충하고 고령의 국가 유공자분들이 집에서 더 가까운 곳에서 의료비 부담 없이 편하게 진료받을 수 있도록 위탁병원을 확대하는 데도 신경을 쓰겠습니다. 그리고 국가를 위한 헌신에 보답하는 주무부처인 보훈처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구축과 더욱 번영된 나라를 위한 기반을 닦는 ‘국민 통합’과 ‘애국심 함양’의 매개가 되는 보훈처가 될 수 있도록 역량을 모아가겠습니다. 대내적으로는 국가유공자를 비롯한 보훈 가족분들을 정성껏 모시면서 우리 사회에 보훈 문화가 확산돼 뿌리내리게 하는 것은 물론, 대외적으로는 참전국과의 교류·협력을 확대·강화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독립유공자 발굴과 포상을 강화해 서훈을 받은 분이 늘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독립유공자 서훈을 더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은 것 같습니다.

“지난 2018년, 명백한 독립운동 사실이 확인되면 기존의 3개월 이상이던 옥고 최저기준을 완화하고, 여성에 대해서는 일기와 회고록 등 직간접 자료를 활용하는 등 독립유공자 포상 심사기준을 개선했습니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2019년에는 역대 최고 수준인 647명을 포상했고, 지난해에도 585명을 포상하는 등 그 이전 10년 동안 연평균 380명을 포상했던 것에서 대폭 확대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보훈처는 적극적인 독립운동 사료 수집과 함께 올해 심사기준을 추가적으로 개선, 독립운동을 하고도 포상을 받지 못한 사례가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를 위한 심사기준 개선은 지난해 관련 학술회의 개최와 전문가 연구용역을 완료했고, 올해 외부 전문가 자문을 통해 개선안을 마련해 광복절을 계기로 포상부터 적용해 나갈 예정입니다.”

―현 정부가 보훈 분야에서 가장 집중한 분야는 무엇인가요.

“국권을 빼앗긴 상황에서 자신의 안위보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까지 바쳐가며 헌신하셨던 독립유공자를 발굴, 포상하고 그 정신을 기리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책무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독립기념관 내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를 확대·개편해 독립유공자 발굴을 지속적으로 추진했으며,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의병과 여성 독립운동가 발굴에도 역점을 뒀습니다.”

지난 21일은 황 처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아덴만 여명작전 성공 1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황 처장은 “제가 군 생활에서 얻은 전술적 지식과 경험, 여러 의견을 취합해 세부 작전계획을 세웠고, 작전에 투입된 청해부대원들이 작전을 실행에 아주 잘 옮겼기에 성공했다”며 “이 작전 성공을 통해 세계가 한국군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고, 특히 우리 군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 국민의 생명을 지킨다는 신뢰를 얻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황 처장은 “당시 작전에 투입된 청해부대 장병들과 해적에게 피랍됐던 삼호주얼리호 선원과 가족분들 모두에게 감회가 새롭지 않을까 생각된다”며 “당시 합동참모본부는 해군 작전사령관이던 저에게 전술통제권을 부여했지만, 좀 약하다는 생각이 들어 작전을 책임지고 수행할 수 있도록 합참의장에게 작전통제권을 요구해 허락받았다”고 회고했다.

정충신 선임기자 csju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