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탄소중립에도 ‘걸림돌’

미국이 원자력 부흥을 꿈꾸며 투자와 지원을 늘리고 있는 가운데서도 탈(脫) 원전 정책을 고수하는 한국의 역(逆)주행은 이어지고 있다. 미국 원전 담당 공무원들이 ‘원전 르네상스’를 꿈꾸며 전략 비전을 마련한 가운데 우리 원전 공무원들은 탈원전 여파로 수사나 감사 대상에 올랐다. 원전이 배제된 안정적 전력수급·원활한 탄소중립은 달성이 불가능하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더구나 독보적 기술과 경험을 살릴 수 없는 탈원전 환경은 수출길까지 막으며 국내 원전 생태계를 붕괴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는 지적이다.

25일 원전 학계와 산업계에 따르면 미국 에너지부 원자력국(Office of Nuclear Energy)이 환경·에너지·경제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방편으로 기존 원전을 계속 유지하고 차세대 원전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겠다는 내용의 ‘원자력 전략 비전’(DOE-NE Strategic Vision) 을 발표한 것은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친(親)원전 추세와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10년 전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 이후 주춤했던 원전 투자는 최근 에너지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탄소 순배출이 0인 탄소중립 추진을 위해 무탄소·청정 에너지원인 원전이 필수불가결하다는 인식이 바탕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 정부도 최근 첨단 원전 기술 등에 10억 파운드(1조5000억 원) 투자 계획을 밝혔다.

이런 가운데서도 한국 정부는 저렴하고 계절·환경적 요인에 관계없이 안정적인 데다 탄소배출이 없는 원전을 배제한 탈원전 정책을 고수하며 전력수급 불안을 야기하고 결국 탄소중립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확정된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정부는 원전 발전설비 용량을 올해 23.3GW에서 2034년 19.4GW로 축소하고, 같은 기간 신재생에너지는 20.1GW에서 77.8GW로 늘릴 계획임을 밝힌 바 있다.탈원전 정책은 원전 수출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소형모듈원전(SMR) 등 미국의 차세대 원전 부흥 정책은 우리 원전 산업에 수출 확대 기회가 될 수 있지만 탈원전 추진국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가운데 수주가 힘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기후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방법으로 최근 원전이 선호되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전근대적인 환경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에너지 쇄국 정책을 하루빨리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sujininva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