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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부쩍 추워졌습니다. 꼬마 공주 손녀가 제집에 가고 없는 할아비 집은 텅 빈 듯 구석구석에서 더 매서운 찬바람이 나오는 것만 같으니 왜일까요? 아마도 우리 집에서 가장 큰 어르신이 자리를 비워서가 아닐까 합니다. 같이 블록을 쌓고 환자가 돼 상대역을 해주며 놀아 줄 때 좋아하던 순간이 자꾸 생각나네요.

‘거주봉’ 대표이사로 취업해서 바쁘게 뛰기 때문일까요? 40년 직장인 신분증을 내려놓은 후의 하루는 짧게 주어지는 것만 같으니 말입니다. ‘거실과 주방에서 봉사하는’ 대표이사는 평생을 미뤄 온 숙제죠. 아내와 손녀들을 위한 할아비의 의무가 된 것 아닐까요? 설거지가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유리컵을 몇 개나 깨고 말았는지 모른답니다. 깨끗하게 한다며 물을 털고 정리하려다가 그만 먼저 씻어둔 냄비 솥에 부딪치며 깨진 유리컵에 손가락을 베이고는 이제 유리컵만 보면 겁이 나기도 한답니다.

두 형제만을 키우는 다소 드라이하던 제게 딸들의 세상은 항상 신비요, 동경의 세계였는데 막내아들이 둘째 딸을 찾아줘서 매우 기뻤습니다. 코로나 가운데서도 지난해 11월에는 딸 찾은 선포식도 가졌답니다. 언젠가 딸을 찾으려는 꿈에 부풀어 직장의 동료들에게 어리석은 설문조사도 했습니다. 곁에서 주워들은 남정네들은 괜찮은 생각이라는 말로 위로해주기도 했으나, 아들 장가보내면 딸을 만날 것이라는 저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딸을 키우는 엄마들에게서 ‘가만히 두는 것이 제일이다’는 만장일치 된 결과를 받아들고서는 초라해지고 말았습니다.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면서 아들들을 떠나보내는 연습을 하게 됐고 막내까지도 떠나 보냈답니다.

지난해 9월에 세 번째 생일을 맞은 손녀가 삼촌 결혼식 때 예물 전달을 담당하는 화동 역할도 잘해줘 박수를 받았습니다. 예행연습도 없이 진행하는 것을 얼마나 잘하던지…. 하객들에게 박수를 유도하는 여유에 모두가 놀라기도 했답니다. 손녀가 생각도 깊고 참을성이 많아 대견스럽지만 염려되기도 합니다. 지금도 커피 속의 얼음을 먹으려고 하다가 넘어져 식탁에 턱을 부딪쳤는데 이내 울음을 그치고 얼음 한 개와 유산균에 수긍하고 음악을 들으며 집안에 명랑하고 경쾌한 음성을 풀어놓아 귀를 즐겁게 해주네요.

지난 토요일 날은 낮에 할아비가 작은 방에 잠시 누웠더니 찾아와서 ‘할아버지 자네! 이불 덮어줘야지!’하면서 무거운 매트와 같이 세워둔 이불을 당기려 하기에 만류하기는 했으나 얼마나 예쁜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답니다. 볼일이 있어 나갔다가 신발가게를 지나며 예쁜 신을 사서 신기고, 할 일 없이 아웃렛에 들러 옷을 사다 주기도 하고 마트에서 좋아하는 치즈를 사 오기도 합니다. 내 자식 키울 때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현상이라 아내가 의아해하기도 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고 입에 넣어도 쓰지 않으니 어떻게 할까요? 이렇게 손녀 바보가 돼가고 있는 할아비는 달나라를 누비고 있답니다.

할아버지 최남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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