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톰 왓슨(오른쪽)이 2009 브리티시오픈 시상식에서 클라레 저그를 든 스튜어트 싱크를 향해 웃으며 축하를 건네고 있다. 디오픈 홈페이지

선두 나선 노익장에 언론 관심
18번홀 2.5m퍼트 넣으면 우승
긴장 탓 멈칫… 홀근처도 못가
26년만의 정상 탈환 물거품

2009년 영국 스코틀랜드의 서쪽 바닷가에 자리한 턴베리 골프클럽. 미국의 톰 왓슨은 잠시 32년 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잭 니클라우스와의 대결로 골프인들에게 너무도 깊게 인식돼온 ‘DUEL IN THE SUN’, 작열하는 태양 아래의 혈투를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1977년과 지금 왓슨의 몸 상태는 현저한 차이가 있었다. 당시의 나이는 거리낌이 없을 27세 팔팔한 나이였지만, 2009년 현재는 59세의 황혼기였다. 더구나 9개월 전 왼쪽 골반 수술을 받았던 터였다. 왓슨에게 마지막 메이저였던 브리티시오픈(디 오픈·로열버크데일GC) 우승이 1983년이었으니 26년 동안 잊혀가는 선수가 돼가고 있었다.

이미지 크게보기 이인세 골프역사 칼럼니스트

디 오픈 우승은 늘 그랬듯, 2009년 턴베리에서도 바람이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날그날 바람의 상태에 따라 선수들이 울고 웃었다. 첫날 목요일의 경기에서 북서풍을 잘 견뎌낸 선수 5명이 65타를 쳤다. 왓슨 역시 65타로 선두 그룹에 올라섰다. 방송의 초점이 그에게 맞춰지고 있었다. 60세를 불과 두 달도 안 남긴 고령의 골퍼가 큰일을 낼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2라운드에서도 역시 70타를 쳐 공동 선두를 지켜냈다. 3라운드에서도 왓슨은 5차례 메이저 우승자답게 경로를 알 수 없는 바람과의 싸움에서 잘 대응해 71타로 마쳐, 중간합계 4언더파를 기록하면서 단독 선두에 나설 수 있었다. 마지막 날엔 챔피언 조에서 당당히 선두로 출발하는 노익장을 과시하게 된 것이다. 갑자기 TV시청률이 오르기 시작했다. ‘59세라는 메이저 최고령의 우승자로 역사적 기록을 깰 것이냐’가 관심이 돼 버린 이유였다.

왓슨은 4라운드에서 단 한 차례도 선두를 뺏기지 않고 전반 9홀을 마쳐 우승의 희망이 보이고 있었다. 왓슨보다 경기를 먼저 끝낸 ‘언더 도그’로 미국의 스튜어트 싱크가 있었다. 하지만 왓슨은 선전을 이어가면서 후반에도 싱크에게 2타, 혹은 1타를 리드하고 있었다. 17번 홀까지 3언더파를 달리던 왓슨은 싱크에게 1타 앞섰다. 마지막 18번 홀에서 파만 기록하면 6번째 클라레 저그를 차지하면서 최고령 챔피언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던 왓슨은 18번 홀에서 티 샷을 완벽히 날렸고, 185야드를 남겨두고 8번 아이언을 들었다. 하지만 왓슨의 스윙은 너무 완벽한 탓에 공은 오히려 핀을 넘어 뒤편 프린지 아래로 굴렀다. 어프로치 샷을 해야 하는 세 번째 샷으로 퍼터를 들었고, 조금 긴듯하더니 홀 2.5m를 지나갔다. 파 퍼트치곤 조금 먼 듯 보였다. 모든 압박감이 그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었지만 그는 망설임이 없었다. 하지만 결과는 마치 아마추어처럼 긴장한 손이 나가다 말고 멈추면서 홀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왓슨은 잘못된 퍼트를 이미 알아차린 듯 마지막 탭 인을 준비하면서 겸연쩍은 웃음을 지었다. 경기를 끝낸 채 왓슨을 바라보던 36세 싱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4홀 플레이오프는 59세 노익장으로선 버거웠다. 싱크는 연장 4홀에서 왓슨을 상대로 6타나 앞섰고 우승의 주인공이 됐다.

우승컵을 든 싱크의 옆에서 왓슨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지만, 자신의 골프인생에서 가장 안타까운 천추의 한으로 남은 순간이었다.

골프역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