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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 경제부 차장

또다시 헨리 조지가 대한민국에 소환됐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당 대표일 때 거론한 조지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재차 언급했다. 주장의 결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현 부동산 시장의 문제를 조지의 이론에 맞추면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쯤 되면 조지는 친문(親文), 혹은 문재인 정부 사람들의 ‘전가의 보도’라 볼 수 있다. 19세기 말의 경제 이론·사상이 21세기에 적용되지 말란 법은 없지만, 상황은 많이 다르다. 그는 토지공개념의 시조라 불린다. 지나친 지대(地代) 추구가 경제성장을 가로막는다고 주장했는데, 이게 문 정부 인사들에게 먹혀드는 모양새다. 그러나 조지가 살던 19세기 말 골드러시의 미국 서부 개척 시대와 지금의 대한민국은 같지 않다. 우리나라처럼 땅이 좁지 않고, 부동산의 초점이 주거용 아파트에 쏠리는 상황도 아니었다. 이런 걸 모르지 않을 여권 인사들이 굳이 조지를 재소환해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의도가 의심스러운 이유다. 지금의 시장경제 시스템이 불만족스럽고, 이게 지금의 부동산 문제의 시작이라고 강조하고 싶은 모양이다. 쉽게 말해 ‘우리가 정책을 잘못한 게 아니라 지대를 추구하는 투기세력을 낳은 현 시스템이 잘못됐다’는 얘기다. 결국 ‘내 탓이 아닌 남 탓’을 하기 위함이다.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역사나 경제학 이론이 중요한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역사적 사실과 이론은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예견했던 셈이다. 수요·공급을 무시한 규제 중심의 정책 한계를 지적한 이론이 어디 한둘일까. 그런 무수한 이론을 제쳐 두고 문 정부 인사들은 자기 입맛에 맞는 몇 안 되는 이론 중 하나인 조지의 주장을 꺼내 들었다. 그의 이론을 자신들 입맛에 맞춰 초과이익환수, 각종 부동산 관련 세금의 중과 등을 추진했다. 그러나 집값은 계속 오르고 있다.

시스템의 문제나 경제 이론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이론은 그 상황, 즉 주어진 조건에 따라 의미가 있다. 핵심은 주어진 조건을 이해하고, 이론을 활용해 유연하고 탄력적인 정책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그런 점에서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실패했다. 그 많은 경제학자와 전문가 얘기는 뒷전이고 조지만 계속 찾는 행태로도 알 수 있다. 집값 잡겠다고 약속해놓고 더 불을 지르는 정책을 만들어낸 자신들의 무능함에 대해선 절대 언급하지 않는다. 모든 게 투기세력 탓이고, 지나친 유동성 탓 그리고 이전 정부 탓이다. 차라리 시스템을 뒤집고, 초법적·위헌적이란 비판을 무릅쓰더라도 투기세력을 모두 잡아넣겠다는 의지와 실천능력을 보여줬으면 덜 답답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럴 능력도 없어 보인다. 노무현 정부 때 실패한 부동산 정책을 이번엔 성공시키겠다고 호언했지만, 각종 규제와 세금만 때리며 집값 상승을 더욱 부추겼다. 더 실망스러운 것은 차기 주택정책 수장도 앞선 이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인식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28일 임명된 새 국토교통부 장관 역시 시장의 기능보다는 정부가 나서서 모든 걸 해결하겠다는 ‘변함없는’ 의지를 내비쳤다. 달라질 건 없다. 내년도 올해와 마찬가지일 것이란 생각에 다가오는 세밑이 더 스산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