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파드리그 해링턴(왼쪽)이 2007년 브리티시오픈 시상식에서 세르히오 가르시아를 위로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4홀 플레이오프 첫 홀서 버디
기선 제압 안전하게 경기 운영
마지막홀에서 1타 차로 승리
아일랜드 출신 선수로 첫 쾌거

영국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의 올드코스에서 20㎞ 북동쪽 바닷가에 자리 잡은 커누스티 골프클럽은 올드코스처럼 전형적인 링크스 코스다. 지난 1842년에 문을 연 커누스티 골프클럽은 1931년 이래 8차례 브리티시오픈을 치렀다. 7번째였던 2007년 대회를 포함해 총 3차례 대회가 모두 플레이오프로 승자를 가렸다.

커누스티는 선수들의 무덤으로도 통할 만큼 어렵고 험난한 조건에서 경기를 치러야 한다. 특히 선두를 달리고 있는 선수에게 커누스티 마지막 18번 홀은 ‘악마의 홀’이라고 인식될 만큼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코스다. 1999년 브리티시오픈에서 장 방 드 벨드(프랑스)의 참혹한 패배가 이를 증명한다. 드 벨드는 3타 차 리드를 지키지 못한 채 마지막 18번 홀에서 트리플 보기를 범했다. 드 벨드는 결국 폴 로리(영국), 저스틴 레너드(미국)와 3자 플레이오프를 치러 패배하고 말았다.

2007년 브리티시오픈에서도 희생양은 있었다. 당시 3라운드까지 스페인의 세르히오 가르시아가 9언더파로 단독 선두에 올랐고, 사실상 챔피언이 결정되는 듯했다. 2위 스티브 스트리커(미국)는 3타 차가 났기 때문. 그런데 선두였던 가르시아에게 4라운드는 지독히 안 풀리는 경기였다. 가르시아는 나흘 중 유일하게 오버파로 부진했다. 2타를 잃고 7언더파로 내려앉았다. 반면, 3라운드까지 선두와 무려 6타나 차이가 났던 파드리그 해링턴(아일랜드)이 14번 홀에서 이글을 기록하는 등 최고의 컨디션을 보이며 4언더파 67타를 쳐 가르시아와 공동 선두로 올라섰다.

이미지 크게보기 이인세 골프역사칼럼니스트

결국 두 선수가 플레이오프를 치렀다. 플레이오프가 시작되자마자 승리의 기운이 해링턴에게 쏠렸다. 4홀짜리 플레이오프 첫 홀인 1번 홀에서 해링턴은 버디를 낚아, 보기를 범한 가르시아에게 2타 차로 일찌감치 달아났다. 16번 홀과 17번 홀에서 두 선수 모두 파를 기록해 마지막 18번 홀만 남겨뒀다.

8년 전 바로 이곳 18번 홀에서 드 벨드가 마지막 홀에서 무너진 사실을 인지한 해링턴은 2타 리드를 지키기 위해 드라이버 대신 우드를 잡고 안전한 플레이를 시도했다. 커누스티의 18번 홀은 올드코스의 개울인 ‘스윌컨 번’처럼 코스를 가로질러 ‘배리 번’으로 불리는 개울이 흐른다. 그것도 페어웨이 중간을 두 군데나 휘감으면서 코스를 3개로 쪼개 놓는 형국이다.

해링턴의 티샷은 첫 번째 개울을 건너 안전하게 페어웨이에 안착했다. 반면 2타를 리드당한 가르시아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460야드가 넘는 파4 홀이지만, 그는 드라이버를 선택했다. 공은 다행히 왼쪽 개울 바로 앞쪽에 떨어졌다. 해링턴은 세컨드 샷도 그린 앞에 도사린 개울 앞까지만 보내려 레이업했다. 가르시아는 롱아이언을 들고 과감한 공략을 했다. 공은 다행히 개울을 넘어 그린에 떨어졌다. 해링턴의 세 번째 샷은 오히려 가르시아의 공 바로 뒤에 멈췄다.

해링턴이 먼저 파퍼트를 시도했다. 하지만 홀을 외면한 공이 1m나 지나쳤다. 잘해야 보기였다. 가르시아의 버디 퍼트는 홀 가까이서 휘더니 한참이나 굴렀다. 낙심은 했지만, 가르시아는 파에 성공했다. 이제 해링턴만 남았다. 해링턴은 긴장된 상태로 보기 퍼트를 집어넣었다. 해링턴은 아일랜드 출신 선수로는 최초로 브리티시오픈 우승컵을 차지했다. 유럽 선수로도 1999년 로리 이후 8년 만에 ‘클라레 저그’를 품은 주인공이 됐다.

골프역사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