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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평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사장

기록적인 한 해가 저물어 간다. 먼 훗날, 역사책에서 2020년은 많은 페이지를 차지할 것이다. 코로나19로 인류는 생명을 위협받았고, 세계인 모두가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았다. 경제 충격도 컸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도 직격탄을 피할 수 없었다. 코로나19가 본격화한 지난 4월과 5월, 수출은 매달 20% 이상 줄었다. 경제성장률도 1·2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하지만 위기 때 진가가 나온다고 했다. 이번에도 모두가 합심해 갑작스러운 변화에 재빠르게 대응하는 자세는 한국 특유의 기업가 정신으로 자리 잡고 있다.

3분기 우리 경제는 1·2분기의 역성장을 딛고 2% 넘게 반등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1.1%로 예상했다. 전체 37개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치다. 우리 정부의 방역 조치와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OECD가 인정한 것이다. 수출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9월, 수출은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플러스 성장을 기록했다. 2개월 뒤인 11월에는 2년 만에 처음으로 총 수출액과 일평균 수출액이 모두 증가했다. 올해 우리 수출은 크게 3가지 특징을 보인다.

우선, 코로나19 상황에서 위생·방역 용품과 홈코노미 분야 수출이 비약적으로 늘었다. 지난 1월, 수출액 3000달러에 불과했던 진단 키트는 10월에 4억1200만 달러 수출을 기록했다. 13만 배 이상으로 증가한 것이다. 둘째는, 새로운 수출 동력 발굴이다. 바이오 헬스, 이차전지, 정밀화학원료, 로봇을 비롯한 7대 신(新)수출 동력 품목이 모두 11월 수출에서 플러스 성장세를 나타냈다. 우리 수출의 오랜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모멘텀을 올해 확보했다. 끝으로, 자동차·디스플레이·휴대전화·가전 등 주력 수출 제품이 하반기에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반도체와 컴퓨터는 장기간 증가세를 유지하며 내년도 한국 무역 전망을 한층 밝게 하고 있다.

한 달도 남지 않은 2021년은 ‘포스트 코로나’ 경제의 리더를 결정하는 분기점이 될 것이다. 비대면·온라인 비즈니스 모델이 확산되면서 무역의 디지털화도 빠르게 진행 중이다. 플랫폼 구축, 데이터 활용 등 ‘디지털 역량’이 세계 시장의 경쟁력으로 떠올랐다. 급성장한 글로벌 온라인 마켓은 우리 중소·중견기업이 적은 비용으로도 세계 시장의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새로운 기회다. 하지만 새해 1월 20일 출범할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통상정책 방향이 확실치 않고, 영국의 ‘노딜 브렉시트’ 가능성도 여전하다. 불투명한 교역 환경뿐 아니라 글로벌 가치 사슬 재편, 국제적 환경 규범의 강화 등 급변하는 통상 질서에 대한 지혜로운 대응도 요구된다.

우리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의 자산’이 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는 빛이 보이지 않는 터널 같았지만, 우리 국민은 포기하는 대신 힘을 모았다. 혹독한 4년을 통과하고 나니 우리도 모르는 사이 산업 체질이 튼튼해졌고, 한국은 IT 강국으로 도약했다. 10여 년이 지난 2011년, ‘무역 1조(兆) 달러’ 시대가 열렸다. 다시 10여 년이 지난 지금, 코로나19로 교역 질서가 급변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우리는 어떻게 ‘무역 2조 달러’ 시대를 열 것인가.

올해 제57회 무역의 날은 ‘무역의 디지털화’가 화두였다. ‘디지털 전환’에 얼마나 빠르게 대응하느냐에 수출 한국의 미래가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