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독립의 오단계

코로나로 인해 많은 것을 잃었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유일하게 나를 위로했던 것은 맑은 하늘이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미세먼지가 돌아왔다. 잠시 잊고 있었던 미세먼지가 다시 삶에 침투한 것을 깨닫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던 마스크가 다시금 답답해졌다. 조금만 더 버티면 쓰지 않아도 될 거라 믿으며 견뎠는데 그게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미세먼지를 체감한 것은 3년 전이다. 친구와 신촌에서 만났던 날이었는데, 그날 마스크를 쓰고 온 친구가 “꼭 써라, 공기가 안 좋다”고 말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때까지도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이 더 드물었다. 아무리 미세먼지가 심하다 한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는 그 어떤 재난보다 체감하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그날 이후로, 미세먼지라는 단어는 심심찮게 눈에 띄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날씨와 함께 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하는 게 일상이 됐다.

코로나로 인해 질병에 대한 아포칼립스(종말) 소설이 많아진 것처럼, 미세먼지가 한국을 뒤덮은 이후 발암물질 섞인 공기가 세상을 뒤덮는 ‘에어 아포칼립스’가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루카의 소설집 ‘독립의 오단계’(허블)에 포함된 단편소설 ‘새벽의 은빛 늑대’도 그중 하나인데, 지구 전체가 심각한 공기 오염을 겪고 있다는 배경을 두고 있다. 소설에서는 마스크와 호흡기 없이 사람이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공기 오염이 심각해진 미래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이를 되돌릴 수 없는 지경이 되자 ‘에어시티’를 건설했다. “붉고 혼탁한 대기에 묻힌 주변과 달리” 에어시티는 “도시 중앙에 방사형의 푸른 하늘”이 보이고, “동화 속 풍경처럼 맑은 수정구슬의 보호”를 받는 듯한 곳이다. 이곳에 모두가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체 자기장으로 오염된 물질을 밀어내는 에어돔 형태의 에어시티는 입주민의 수가 정해져 있다.

우리는 공기가 모두에게 평등할 것이라 믿고 있다. 신분과 자본의 차이를 떠나 서울의 미세먼지를 모두가 공통으로 들이마시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낮은 구역으로 갈수록 좋지 않은 공기를 마실 수밖에 없는, 가장 극단적인 격차의 형태를 보여준다. 이 시대의 로또는 돈이 아닌 에어시티 입주권이다. 낮은 계층의 사람들은 그 희박한 확률에 모든 걸 걸어야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공기를 구매하는 시대는 이미 도래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맑은 하늘 자체를 일부 시민들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 그러니 에어시티의 입주권에 모든 희망을 걸기 전에 우리는 모두가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권리를 더 강하게 외쳐야 한다.

소설가

이미지 크게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