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게티이미지뱅크

▶▶ 독자 고민

동네 아이들을 가르치는 30대 학습지 교사입니다. 매일 아이들과 부모님을 접하는데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해서 난처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특히 집 밖에서 마주치면 못 알아보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일부러 못 본 척하는 게 아닌데도 오해를 삽니다. 그래서 이제는 길을 다닐 때도 일부러 사람을 안 보고 풍경을 보고 다닙니다. 병원에 가봐야 할까요?

이미지 크게보기 문요한 정신과 의사

▶▶ 솔루션
A. 상대방에게 집중하시고 얼굴·행동 특징 잘 살펴보세요

사람을 매일 상대하는 일을 하니 참 난처하시겠군요. 이렇게 사람의 얼굴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증상을 ‘안면실인증(prosopagnosia)’이라고 합니다. 심한 경우는 가족의 얼굴도 못 알아봅니다. 가벼운 경우까지 포함하면 인구의 10% 정도가 이 증상을 겪고 있다고 추정됩니다.

왜 이런 문제가 생길까요? 사람은 언어만이 아니라 얼굴과 눈빛 등 온몸으로 소통합니다. 그러므로 얼굴을 기억하고 표정을 읽는 것은 사회성의 핵심능력입니다. 이렇게 얼굴이 중요하다 보니 사람의 뇌에는 사물과 별도로 얼굴만을 인식하는 시각 영역이 따로 발달해 있습니다. 바로 뇌 측두엽에 위치한 ‘방추상 얼굴 영역’(Fusiform face area)입니다. 이 부위가 뇌혈관질환, 퇴행성 뇌질환, 외상 등에 의해 손상되면 얼굴을 잘 인식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뚜렷한 뇌 손상이 없는데도 얼굴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박자 감각이 없는 음치나 길을 잘 못 찾는 길치처럼 선천적으로 얼굴 인식능력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일종의 ‘얼굴치’라고 할 수 있겠죠. 이들은 적어도 서너 번 이상은 만나서 대화를 나눠야 간신히 얼굴을 기억합니다. 이조차도 상대가 안경을 쓰거나 헤어스타일을 바꾸면 못 알아봅니다. 그러나 선천적인 약점이라고 넘겨버리기 어려울 만큼 최근 들어 안면인식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어려서부터 또래 관계가 빈약하고, 문자 중심의 소통과 과도한 SNS 활동 등 자신에게만 몰두한 채 살아가느라 얼굴인식의 뇌 부위가 제대로 자극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주의력결핍증처럼 새로운 문명병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뇌 손상이 원인이 아니라면 뾰족한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입니다. 얼굴인식 능력이 떨어지는 분들은 대인관계에 자신감을 잃고 더욱 상대의 얼굴에 집중하지 못하기에 문제가 악화합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선 자신을 캐리커처 화가라고 생각해보면 좋습니다. 상대를 그림으로 그린다고 생각하며 상대의 얼굴 특징을 잘 살펴보세요. 혹은 얼굴이 아니라도 그 사람의 목소리나 몸짓, 자세, 걸음걸이, 신발 등의 특징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음치 탈출처럼 아주 더디지만 조금씩 나아질 수 있습니다.

문요한 정신과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