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일러스트 = 밥장 작가

2050년 서울 마포구의 한 가정에 아이가 태어났다. 구청은 아이와 생애주기를 함께할 ‘AI(인공지능) 반려봇’을 드론으로 배송했다. 로봇 실비보험, 로봇 작명권, 로봇 전문 가족사진 인화권 등 반려봇 3종 선물 세트도 함께 보냈다. 이 반려봇은 아이가 어떻게 성장하는지 스크린 하고, 같은 나이 아동의 성장 데이터를 분석해 아이의 양육을 돕는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시기가 되면 ‘AI 개인교사’(AI learning companion) 역할을 하게 된다. 학과 공부 지도는 물론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아이의 특징과 장단점을 분석해 진로 지도를 하기도 한다.


# 시나리오 1 : AI를 활용하는 미래 교육

‘인간이 만든 완벽한 타자’(홍성욱 서울대 교수)인 AI와 인간의 관계 설정은 당면한 문제다. 지적 능력이나 섬세한 기술을 요구하는 분야에서 AI는 인간을 위협하고 있고 예술 분야에서도 자기 영역을 구축해나가고 있다. AI가 인간과 지적 경쟁을 하고 있고 조만간 인간을 넘어설 것이라는 예측과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그러나 인간과 AI가 경쟁하고 결국 어느 한쪽이 승리를 거둬 다른 한쪽을 지배할 것이라는 전망은 AI를 창조한 인간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인간은 이미 ‘만물의 영장’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생명이 있는 존재는 물론 사물과의 공존에 대해서도 철학적 고민을 시작했다. 당연히 스스로 창조한 AI와 ‘관계 맺음’에 대해서도 지혜를 발휘할 것이다. 다만 치열한 고민과 준비는 필요하다. 미래 사회를 대비할 역할과 책임을 맡고 있는 교육이 주목받는 이유다.

AI 반려봇을 이용한 양육과 교육은 AI를 적극 활용하는 공존 방식이다. AI는 인간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삶에 활용하기 위해 만든 것인 만큼, AI를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이 말하는 ‘특이점’(Singularity Point·AI의 지능이 인간 지능을 돌파해 제어할 수 없는 속도로 발전하는 상황)이 오지 않는다는 인식을 근거로 한다. 조지프 E 아운 노스이스턴대 총장은 ‘AI 시대의 고등교육 로봇 프루프’에서 “인간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우리가 처한 맥락을 완벽하게 고려하고 인식한다. ‘습득·통합·적용’의 학습 단계를 거치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같은 능력을 바탕으로 인간은 ‘로봇 프루프’(Robot-Proof·로봇으로 대체되지 않는 것) 특성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무엇이든 배우려 하는 인간 본성도 공존의 키가 될 수 있다. 한준상 연세대 교육학과 교수는 배움 정신이 충만한 인간 즉, ‘호모 에루디티오’(Homo Eruditio) 개념에 주목했다. 한 교수는 “인간은 언제 어디서든지 배운다. 배움 본능이 있다. 일상이 배움의 환경이고 배움의 소재이며 배움의 연속이다”고 했다. 이 같은 본성 자체가 교육 향상을 이끌고, AI와 공존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AI 가정교사가 있는 시대에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간 대면 접촉이 필요한 ‘PBL’(Project Based Learning) 수업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임동균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대면 접촉에 대한 욕구를 타고나고, 30년 뒤에도 이 같은 특성은 달라지지 않는다”며 “이 같은 욕구를 충분히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교육 향상이 지속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호 아시아교육협회 이사장(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하이터치 하이테크’(High Touch High Tech) 모델이 일반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전에는 AI와 학습하고, 오후에 교사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오전 AI 수업 때는 학생들의 태블릿 스크린에 정교하게 개별화된 학습 과정이 제시된다. AI가 학생들의 특성, 능력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을 내놓는 것이다.

이렇게 학생들은 오전에는 기초학습을 하며 지식 습득에 주력한다. 이 시간 교사는 학생들 관리·감독하는 데 그치지만 오후는 교사의 시간이다. 교사 주도로 지식을 적용하고 발전시키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렇게 학교에서는 △AI 튜터를 통한 적응학습(Adaptive Learning) △교사의 멘토링·카운슬링 △각종 프로젝트 학습 등 3가지 액티비티가 진행되는 것이다.

이런 시대가 오면 창의성·주체성 개념은 더욱 중요해진다. 실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0년 뒤 교육 방향성으로 ‘자기 주체성·학생행동주체’(Student Agency) 개념을 제시했다. OECD는 교육에 대한 관점을 재정립해 △능동적인 학습자 양성 △학습자 주체성 향상 등을 내용으로 하는 ‘학습나침반 2030 프로젝트’를 수립했다. ‘구글링’ 한 번 하면 알 수 있는 지식을 잘 외우고 있는 인재가 필요한 게 아니라, 학습 나침반을 쥐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창조적 인적 자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안드레아스 슐라이허 OECD 교육국장은 최근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어떤 게 진실인지 아닌지 미래에는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며 “앞으로 나침반의 개념이나 학생 주도성 개념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지 크게보기인류 최초 ‘사이보그’ 닐 하비슨 영국 작가 닐 하비슨은 뇌에 아이보그(Eyeborg) 안테나를 이식한 ‘인류 최초의 사이보그’다. 아이보그는 색을 인지해 소리 파장으로 변환할 수 있는 장치다. 안테나 이식 이후 그는 전(全)색맹이라는 장애 극복에 더해 적외선부터 자외선까지 빛의 주파수를 감지할 수 있게 됐다.

이미지 크게보기로봇개 ‘아이보’ 합동장례식 지난 2018년 일본 도쿄 외곽의 한 절에서 로봇개 ‘아이보’(AIBO)의 합동 장례식이 열리고 있다. 아이보 주인들은 재단에 올려놓은 아이보 곁에 로봇의 일평생을 담은 글을 적어두고 장례를 치렀다. 아이보는 일본 소니가 1999년 처음 출시한 애완 로봇개로, 2006년까지 15만 대 이상이 팔렸다. 당시 가격이 200만 원이 넘었지만, 고령화 시대를 맞이한 일본 사회에서 아이보는 큰 인기를 모았다. 이후 침체를 겪던 소니는 2006년 아이보 생산을 중단했고, 2014년부터 수리 서비스도 제공하지 않았다.

# 시나리오 2 : AI와 인간의 상호작용과 융합 가능성

2060년 어느 날 서울 마포구청 앞 합동 장례식장. 10년 전 태어나 AI 반려봇과 10년을 보낸 아이들이 이제는 작동하지 않는 반려봇 옆에 황망한 표정으로 서 있다. 이날 아이들은 10년 전 구청에서 준 바우처로 찍은 가족사진을 놓고 태어나 처음으로 장례를 치렀다. 아이들은 부모 품을 처음 떠나 유치원에 홀로 가던 날 “넌 할 수 있어”라고 말한 반려봇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이 반려봇을 생산한 업체는 로봇 생산 과잉에 따른 채산성 악화로 2년 전부터 해당 모델 생산을 중단했다. 지난해 여름부터는 부품이 없어 수리 서비스도 제공하지 않았다. 로봇은 크고 작은 고장을 일으켰고, 이 로봇과 10년을 같이한 아이들의 마음은 타들어 갔다. 1년 전부터 구청은 구민들에게 최신 AI 로봇으로 무상 교체해준다는 방침을 알렸지만, 구민들은 구청의 카톡에 답신하지 않았다. 이들에게 수년간 감정적으로 상호작용한 ‘가족’을 ‘새 기계’로 바꿔준다는 말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민 여론을 안 구청은 결국 정책 방향을 틀어 장례 지원에 나서기로 했고, 이날 처음 대규모 합동 장례식이 열렸다.

AI와 공존하는 미래에선 AI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이 AI 로봇은 아이의 실질적 양육자이자, 아이가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친구다. 이 로봇이 영혼이나 감정이 있는지는 아이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내가 감정이 있는 것처럼 느끼고, 감정이 있는 존재로 보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카이스트 미래전략 2021’을 보면, 소니의 로봇 강아지 아이보(AIBO)의 합동 장례식을 언급하며 로봇과 인간을 ‘관계론적 관점’에서 분석했다. “우리는 기계는 모두 같은 기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기계를 영혼과 대비되는 것으로 바라본 철학자 데카르트적 관점이 담겨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기계는 기계일 뿐이란 생각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 AI 로봇의 도덕적 지위는 실제로 로봇이 처해 있는 맥락과 그 속에서 이뤄지는 상호작용과의 관계를 통해 봐야 한다.”

이런 미래에서는 AI와 상호작용을 통한 학습이 교육의 중심이 된다. 홍성욱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인류는 이미 스마트폰 없이는 하루도 살기 어려울 정도로 기계화된 존재”라며 인간과 기계가 결합한 사이보그(Cyborg·생물과 기계장치의 결합)의 등장도 결국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실 이미 낮은 수준의 사이보그는 존재한다. 흑백으로만 세상을 보는 전(全)색맹인 영국 작가 닐 하비슨(Neil Harbisson)은 스스로 사이보그가 됐다. 색을 인지해 소리 파장으로 변환할 수 있는 아이보그(Eyeborg) 안테나를 뇌에 영구 이식한 것이다. 이 같은 방식으로 각종 학습 보조장치를 몸속에 심는다면, 인간의 학습 능력은 획기적으로 향상될 수 있다.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의 행보를 보면, 고도화된 사이보그의 등장도 머지않은 일로 보인다. 머스크의 또 다른 회사인 뉴럴링크(Neuralink)는 ‘거트루드’(Gertrude)라는 이름을 가진 돼지의 뇌에 컴퓨터 칩을 이식했다. 이 칩은 지름 23㎜, 두께 8㎜의 동전 모양인데, 돼지의 뇌파를 초당 10메가비트 속도로 외부에 전송한다. 충전식 배터리로 작동하고, 피부를 통해 무선으로 충전할 수 있다. 머스크는 칩을 두개골 속 ‘핏빗’이라고 표현했다. 핏빗은 운동량이나 심장 박동 등을 측정하는 스마트워치다. 현재는 뇌 피질을 건드려 이식하는 정도지만 최종 완성을 위해서는 신경이 몰려 있는 뇌의 안쪽인 회색질에 칩을 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뉴럴링크는 일종의 텔레파시 같은 수준까지 진입하길 원한다. 칩을 통해 생각을 전송하고 뇌파로 상대방과 소통한다. 최종 목표는 컴퓨터에 내 기억을 저장하고 로봇에 내 의식을 이식하는 것이다. 인간이 AI와 공존하는 수준을 넘어 융합되는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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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나리오 3 : AI에 의한 지배 가능성과 극복을 위한 교육

다시 2050년 어느 날. 전 세계 가정에 있는 AI 스피커를 통해 수집한 각종 정보가 AI 플랫폼을 독점한 기업에 흘러들어 가고 있다. 이 스피커는 ‘OK 구글’ ‘SIRI’ 등의 명령어가 있어야 활성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이 스피커는 주인이 명령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집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말을 언제나 듣고 수집해 재구성한다. 이 정보는 AI 플랫폼을 독점한 기업에 실시간으로 전송돼 독점 기업의 의도에 따라 마음대로 쓰인다. 이런 비극적 상황이 현실화하면, AI 알고리즘에 의해 인간이 지배당하는 사회가 올 수 있다. 인간이 지배당하는지도 모른 채 제시된 알고리즘에 따라 인간이 행동하는 끔찍한 상황이다. 독점적 지위를 확대하고 있는 구글은 창립 초기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는 모토를 내걸었는데, 이런 시대가 오면 ‘사악해진 구글’의 모습을 한 기업, 단체, 국가를 다수 마주하게 될 수 있다.

강정한 연세대 교수는 “미래에는 AI 알고리즘이 인간의 삶에 지금보다 훨씬 복잡 미묘하게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당초 문제라고 생각했던 사안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현재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를 예로 들었다. 과거에는 정치·상업적 목적을 관철하기 위해 특정 단어를 상위 검색어로 올리는 상황에 대해 사람들이 상당한 거부감을 보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경향이 크다. 강 교수의 설명을 위 상황에 적용하면, AI 스피커가 인간에게 오늘의 ‘행동 강령’을 알려주는 일을 사람들이 일상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AI에 의해 대다수가 지배당하는 미래도 배제할 수 없다. 인간의 주체성을 송두리째 상실하는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AI 시스템에 의해 비정치적 결정 정도는 인간이 수용하는 상황이다. 이 경우 인간은 ‘AI 로봇의 결정이 99%는 옳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다.

이런 시대에는 데이터 교육에 대한 필요성이 더욱 커진다. 조지프 E 아운 총장은 ‘로봇 프루프’를 위해서는 새로운 문해력인 △기술적 문해력 △데이터 문해력 △인간 문해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는 디지털 세계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무기다. 구체적으로, 기술적 문해력은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를 완벽한 수준으로 활용하는 역량을 극대화하는 교육이다. 데이터 문해력은 정보를 해독하고 그 맥락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인간 문해력은 문명화한 인간이 갖춰야 할 자질을 키워주는 교육이다.

AI 능력이 막강해지고 지식이 넘쳐나는 시대가 될수록 지식을 조합하고 편집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1·2차 산업은 순종적이고 성실한 노동력을 원했다. 그러나 3·4차 산업은 뛰어난 성과를 내는 노동력을 원한다. 이를 위해 지식을 기계적으로 습득하는 게 아니라, 기존 지식을 조합하고 편집하는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임동균 교수는 “결국 핵심은 기존 지식을 가져와 편집해 조합하는 능력”이라며 “이 능력은 사회 각 분야 리더 등 소수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이 갖춰야 할 능력”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원하는 AI의 모습을 얻기 위한 로봇 윤리 교육도 필수적이다. 인간이 로봇에 의해 대체될지 모른다고 두려움에 떨 게 아니라, 인간을 위한 도구로 AI를 활용하기 위한 일종의 규칙을 만드는 것이다. 서울대 윤리교육과 박사과정 지현아의 ‘로봇윤리의 도덕교육적 적용 방안 연구’에 따르면, 로봇 윤리 교육은 ‘로봇의 윤리’와 ‘인간의 윤리’의 영역을 포괄해 궁극적으로 ‘인간과 로봇의 공존을 위해 인간과 로봇을 탐구하고 성찰하는 교육’이다. ‘로봇의 윤리’와 관련해서는 인간의 존재, 로봇의 존재, 인간과 로봇의 관계 등에 대한 고찰의 기회를 제공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도덕적 정체성을 정립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준다. ‘인간의 윤리’와 관련해서는 로봇을 인간 존엄성을 해치지 않는 방향에서 안전하게 설계·제작·사용하고, 로봇 기술과 관련된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과학적 시민성을 강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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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와 교육 격차

교육의 미래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게 교육 격차 문제다.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함에 따라 교육 부문에서 가구별 소득 등에 따른 학력 격차가 커지고 있다. 미래에도 ‘계층 불평등→교육 기회 불평등→학벌 격차→불평등 재생산’의 악순환 고리가 끊어질 가능성이 크지 않다. 오히려 AI로 인해 이 같은 상황이 더욱 심화할 수 있다.

한 예로 ‘플랫폼 민주화의 비극’이 교육 분야 전반에 나타나 교육 격차가 확대되는 상황을 생각할 수 있다. 이 시대의 교육은 플랫폼을 통해 모두에게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로봇 프루프’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이 경우 가장 민주적으로 보이는 교육 체제가 사실은 소수에게만 제대로 된 교육을 허락하는 식의 비민주성을 보이게 된다.

강정한 교수도 ‘글로벌 강연 플랫폼 테드(TED)닷컴 아이러니’를 우려한다. 테드닷컴의 강의는 모두에게 공개돼 있지만, 실제 이 강의 현장에 참석해 강연자, 참석자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제한적이다. 제러미 하이먼즈 등의 ‘뉴파워:새로운 권력의 탄생’에 따르면, 테드 강연에 참석할 수 있는 사람은 인맥과 재력이 있는 극소수이며, 이 연례행사에 참여하려면 많게는 2만5000달러(약 2800만 원)를 내야 한다. 주최 측은 강연자만큼 참석자를 까다로운 기준으로 엄선한다. 이 같은 테드닷컴 아이러니가 사회 전반에 펼쳐지면, 돈·권력 등 사회적 자본에 따라 교육 격차가 더욱 커지는 비극이 올 수 있다. 강 교수는 “미국 기업 아마존으로 인해 유통 민주화를 이뤘지만, 동시에 아마존이라는 공룡 기업이 탄생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테드닷컴 사례에서 보듯, 소수가 교육받고 소수에게 더욱 파워가 집중되는 사회가 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AI가 교육 격차를 줄이는 미래도 예상할 수 있다. AI 개인교사가 등장하고 몸속 학습 보조장치 등의 AI 교육 도구가 전 세계에 차별 없이 보급돼 높은 수준의 교육을 누구나 받을 수 있는 미래다. 교육 인프라 측면에서는 2014년 개교한 미국 미네르바대가 일반화되는 상상을 할 수 있다. 미네르바대는 온라인 강의만 하고, 외부 기관이나 전문가가 만든 세계 최고 수준의 강의 콘텐츠를 제공한다.

이제 ‘AI와 지적 경쟁은 가능할까’라는 질문으로 돌아갈 순간이다. ‘자기 주도 자율학습’을 하며 한계 없이 발전하는 AI와의 경쟁을 전제로 한 질문 자체가 어리석을 수도 있다. 해당 주제에 대한 다각도의 모색에도 선명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이유다. 다만, 사고의 범위를 AI와의 경쟁에서 공존·협력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점, AI를 기꺼이 끌어안는 교육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손기은 기자 s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