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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근 명지대 명예교수 바른사회 공동대표

정부와 여당은 3일 부동산 공시가격을 2030년까지 10년에 걸쳐 시세의 90%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다만, 시가 반영 비율 인상에 따른 세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내년부터 2023년까지 한시적으로 재산세율을 0.05%포인트 인하하되 그 기준은 ‘6억 원 이하 1가구 1주택’으로 한정하는 방안도 내놨다.

공시가격 6억 원 이하 주택은 시가 8억∼9억 원으로, 전국 주택의 95%가 이 구간에 포함된다. 5%는 여지없이 세금폭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왜 ‘95 대 5’인가. 6억 원 이하 주택을 가진 가구는 사회적 약자이고 그 이상은 사회적 강자이기 때문인가. 차등 적용은 ‘사회적 당위’로 여겨지지만 정당한 논거는 없다. 인습적 정책 사고가 타성화한 것뿐이다. 국민을 편가르는 것이다.

미국에는 ‘어퍼머티브 룰(affirmative rule)’이 있다. 번역하면 ‘약자우대 정책’이다. 대학교수를 지망하는 흑인과 여성은 일정 범위 내에서 우대받는다. 흑인·여성 우대정책은 백인 남성 쪽에서 보면 일종의 차별 정책이다. 그런데도 약자우대 정책이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다양성’과 ‘기회 균등’이란 가치가 존중됐기 때문이다. 약자우대 정책은 사회적 약자에게 ‘경제적 유인’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혹자는 ‘누진소득세제’를 들어 재산세 차등 경감 조치를 정당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층위가 다른 문제다. 선진국 대부분이 누진세제를 채택하고 있다. 소득이 올라갈수록 평균 세율이 올라간다. 하지만 누진소득세제는 저소득층의 세 부담을 덜어주는 게 아니다. 고소득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내게 하는 것이다. 이는 경제학에서 ‘응능(應能)원칙’으로 개념화됐다.

소득은 세금과 가처분소득으로 나뉜다. 돈을 많이 벌면 그만큼 세금을 낼 여력이 많아지므로 세 부담을 무겁게 하는 것이다. 그 기저에는 ‘형평성 제고’라는 정책 목표가 깔려 있다. 논리적으로도 ‘형평성 제고’를 부정할 수 없는 만큼 누진세제가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러면 고가주택을 사는 사람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해야 하는가. 그렇다. 재산세를 매길 때 주택가격 외의 다른 과세 기준을 찾기 어렵다. 그렇다면 주택가격에 ‘비례해서’ 세금을 부과하는 게 논리적으로 맞다. 주택 소유는 일종의 ‘소비행위’로 주택 소유자에게 소득을 가져다주는 게 아니다. 따라서 저가주택에 대해 재산세율을 낮춰주는 것은 인기 영합과 다름없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강자 대 약자’의 2분법적 프레임에 갇혀 있다. 사회적 약자가 양산되고 있다. 노인과 여성은 당연 약자고 청소년도 약자다. 저소득층, 저자산보유자, 임금 근로자, 자영업자 모두 약자다. 온통 약자로 채워진 사회가 건강하고 지속 가능할 리 없다.

이번 재산세율 인하는 내년 4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부동산 실책에 따른 민심 악화를 막기 위한 고육책으로 보인다. 이대로 가다간 선거에서 못 이긴다는 위기의식의 반영이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정책은 ‘원칙의 문제’로, 결코 ‘특수목적을 위한 수단’이 돼선 안 된다고 했다. 공시지가 비율 인상에 따른 세 부담 경감이 목적이라면 주택가격과 관계없이 세율을 낮춰야 한다. 왜 국민을 편가르기 하는가. 형평성 제고는 보유세 아닌 소득세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