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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후쿠시마 사고는 人災의 연속
전문가 제안 무시해 계속 실패
‘ALPS 처리 뒤 방류’ 눈치작전

방사성 물질 모두 제거 불가능
한국 미국 합심해 저지 나서야
‘과학 외면한 정치’ 타산지석

일본 후쿠시마(福島)는 이름과 달리 화(禍)가 된 지 오래다. 정치가 과학을 외면했고, 이젠 대가를 치러야 할 때다. 인근 해역 수산업은 물론 환태평양 생태계가 위험하고, 남북반구 대기권이 불안하게 됐다. 게다가 바다엔 울타리가 없으니 대서양과 인도양이라고 자유로울 수는 없다. 단지 시공간 문제일 뿐 사실(史實)은 사실(事實)이다.

1950∼1970년대 미·소(美蘇)가 피워올린 버섯구름에서 방출된 방사성 낙진이 아직도 우리의 입과 코를 들락거리고 있다. 기류를 타고 하늘을, 해류를 타고 바다를 떠다니기 때문이다. 물론 세월과 함께 엷어지겠지만, 방사성 기체나 액체, 고체는 먹이사슬을 타고 어느 날 우리 밥상에 오를 수도 있다.

필자는 1980∼1990년대 미국 웨스팅하우스에서 비등(沸騰)원자로가 만에 하나 녹아내릴 때 원전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1979년 미국 스리마일과 1986년 소련 체르노빌 사고를 참조해 미국형 비등로 전산 해석을 주도하고, 중대 사고 특허 기술을 적용해 원자로심 안전성과 격납 건물 건전성을 예측했는데, 이 전산 코드는 아직도 세계 원전업계가 널리 사용하고 있다.

그 노형(爐型) 가운데 하나가 후쿠시마 원전이었다. 이때 내린 결론이, 후쿠시마 원전에 초대형 지진해일이 닥치면 다이니(第二) 원전은 괜찮지만, 다이이치(第一) 원전은 잠길 수 있으니 제방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도쿄전력은 설마 했다. 결국, 푼돈 아끼려다 거금을 쏟아붓는 우(愚)를 범했다. 후쿠시마 사고는 자연이 아닌 인간이 부른 재앙이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연이어 전국 방송에 나가 스리마일과 체르노빌을 언급하며, 노형은 다르지만 수소 폭발의 위험과 노심 용융의 위협을 예고했다. 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며칠 간격으로 후쿠시마 1∼4호기의 원자로와 저장조가 터지고, 그 후 수(手)계산으로 1∼3호기 원자로 완전 파손과 4호기 저장조 대량 파손을 예견했다. 물론 믿어주지 않았고, 도쿄전력은 몇 달 뒤에야 시인했다.

인근 지역은 물론 인접국을 방사능 재앙으로부터 구하려면 1∼4호기 지하에 콘크리트를 타설하고 붕산수와 모래와 진흙을 주입해 지하수 유입과 냉각수 혼합을 예방하고, 멈춘 다음에도 잔열로 뜨거운 원자로에 해수라도 뿌려서 한시바삐 식히고, 방사성 물질 누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콘크리트가 여의도 63빌딩의 4배 넘게 들더라도 차폐를 서둘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놀랍게도 며칠 후 가쿠 미치오(加來道雄) 미 뉴욕주립대 교수도 CNN에 출연해 후쿠시마 사고 원전을, 낭떠러지에 버둥거리는 데 견주며 콘크리트 차폐밖에는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공학자의 조언을 백안시하며, 공상과학 같은 ‘동토차수벽’ 즉, 주변을 통째로 얼려 지하수 유입을 막겠다는, 지하철에나 쓸 법한 시공에 투자하더니 결국 백기를 들었다. 이젠 ALPS라는 다핵종 제거 설비를 들고나와, 123만t에 이르는 방사성 오염수를 ‘처리’해 태평양으로 흘려보내겠다고 국제사회 눈치를 보니 한·미가 앞장서서 이를 용납하거나 간과해선 안 된다. 미국 차기 대통령이 확정될 때까진 우리나라가 국제사회를 선도해 일본의 정치적 망발을 차단하고, 과학적 진실을 전하는 데 정부·학계·시민이 합심해야 한다.

ALPS는 일본 국내 기술로 설계·제작했는데 미국 모 기업 설비보다 제거 능력이 많이 떨어진다. 세계 최고 기술보다 자국 초보 기술을 우대한 결과다. 더욱이, 현재 알려진 오염수 총량은 올림픽 수영장 615개를 채울 정도에 이른다. 한마디로 웬만한 인공호수를 채울 수 있는 물량이다. 여기엔 온갖 방사성 물질이 가득 차 있다.

핵분열생성물로 바륨, 세슘, 스트론튬, 요오드, 제논, 크립톤, 루테늄, 부식 생성물로 크롬부터 아연, 게다가 중성자 방사화로 삼중수소와 탄소-14(보통은 12)까지 다양하다. ALPS가 이를 모두 제거할 수 있을까? 단연코 아니다. 얽히고설킨 연립방정식의 해법이 묘연하다. 일본은 오염수 저장용기 부지를 서둘러 추가 확보하고, 확실한 제염 기술이 개발될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한다. 2022년 여름 꽉 찬다는 이유로 태평양 방류(放流)는 어불성설이다. 방사능 재앙의 책임은 전적으로 자국이 져야 한다. 절대로 대양과 대기와 타국에 전가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