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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엠 ‘원’

모의고사 석차를 교실 벽에 붙이며 담임은 이런 말씀을 하신다. “우리 반이 꼴찌야.”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나 ‘여고괴담’에 등장하는 얘기가 아니다. 상위권에 있다고 당사자가 기뻐하는 모습도 찾기 어렵다. 반에서 2등을 해도 시무룩하다. 그렇다고 1등은 행복한가. 전교 1등이 아니어서 우울하고 전교 1등은 전국 1등이 아니라서 불행하다. 그렇다면 전국 1등은? 그는 다음 시험에서 계속 1등을 못할까 봐 초조하다. 가수 남진 씨라면 어떻게 평할까. “참 거시기합니다.”

음악동네 담벼락에도 게시판이 있다. 매주 순위 발표를 한다. 여기선 등수뿐 아니라 횟수도 중요하다. 금메달을 따면 메인 뉴스에도 이름이 나온다. 한국 최초 은메달 수상자인 싸이는 ‘강남스타일’로 한때를 풍미했다. 요즘은 방탄소년단이 대세다. 국회에서도 이름이 거론될 정도다. 그동안 ‘빌보드200’ 5위권에 진입한 K-팝 그룹은 여럿이지만 학부모 그룹에선 방탄소년단만 주로 기억한다. 하지만 스웨덴 출신 아바(ABBA)의 노래처럼 ‘승자독식’(The Winner Takes It All)이라고 탄식할 필요까진 없다. 차분히 들어보면 이런 가사도 나온다. ‘게임은 다시 계속된다’(The game is on again).

이미지 크게보기 프로듀서·작가·노래채집가

음악동네에도 연습생을 키우는 특목고(?)가 여럿 있다. 원조 명문은 단연 SM엔터테인먼트다. 슈퍼엠(SuperM)은 샤이니 태민, 엑소 백현·카이 등 SM 소속 7명이 합친 별동대다. 첫 정규앨범 ‘슈퍼 원’(Super One)이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2위에 올랐다. 타이틀곡은 ‘몬스터’(Monster)와 ‘인피니티’(Infinity)를 하이브리드 리믹스한 ‘원’(ONE)인데 한국어 가사라고는 ‘고갤 들어’ ‘나를 느껴봐’ ‘높게’ ‘날려’ ‘우리 움직임은 거대한 그 하나’ ‘너와 내가 하나 된 세상에’가 전부다. ‘편지’로 유명한 듀엣 어니언스가 ‘양파들’로, 가수 패티김이 한동안 김혜자(본명)로 활동해야 했던 1970년대 초랑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글로벌 기자간담회(9월 25일)에서 백현은 “많은 분이 희망을 갖고 노래를 들으며 행복을 느끼셨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분의 이름도 빠지지 않고 나왔다. 마크는 “미국에서 처음 데뷔했을 때 이수만 선생님이 K-팝 어벤져스라고 소개했는데 실제로 마블과 머천다이징 컬래버레이션을 하게 돼 영광”이라고 말했다.

가수 시절 이수만 대표가 작사 작곡한 노래 중에 ‘행복’이 있다. ‘사랑하고 미워하는 그 모든 것을/ 못 본 척 눈감으며 외면하고/ 지나간 날들을 가난이라 여기며/ 행복을 그리며 오늘도 보낸다’. 그가 잇따라 승승장구만 했다면 오늘날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 시절의 수첩엔 현진영처럼 ‘흐린 기억 속의 그대’가 남아 있다.

김소운의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엔 이런 말이 나온다. “가난은 결코 환영할 것이 못 되니 빨리 잊을수록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난하고 어려웠던 생활에도 아침 이슬같이 반짝이는 아름다운 회상이 있다.” 반짝반짝 창의력이 번쩍번쩍 자금력으로 바뀌는 곳이 음악 시장이다. 가난은 행복의 반대가 아니고 오히려 재료다. PD 시절 그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면 나는 신분증, 그는 방문증을 달고 있다. 신분은 수시로 바뀌는 것이지만 기대와 존중이 있는 방문은 오늘도 열려 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정현종의 시 ‘방문객’ 중)

평탄하기만 하면 노래가 안 된다. 음악동네의 산을 보라. 구비(굽이)가 있고 고비가 있다. 오르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다. 바다를 보라. 깊은 데가 있고 얕은 데가 있다. 음악동네에선 높이 오르는 것, 오래 견디는 것, 멀리 펼치는 것들이 두루 가치 있다. 창의성과 다양성이 공존하는 즐거운 경쟁. 좋지 아니한가.

프로듀서·작가·노래채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