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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일랜드 → 英 나머지 지역
건너는 상품에 통관절차 생략
英 “일자리·국내시장 등 보호”
EU “국제조약 노골적인 무시”

영국이 올해 연말까지 설정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전환 기간 종료를 앞두고 국내시장법 제정을 추진하면서 EU 탈퇴협정을 무력화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영국 정부는 잉글랜드·스코틀랜드·북아일랜드·웨일스 간 원활한 교역을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EU의 관세를 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내시장법에 따르면 전환 기간 이후 북아일랜드에서 영국 나머지 지역으로 건너가는 상품에는 아무런 통관 확인 절차가 적용되지 않는다. 이는 영국이 EU 탈퇴협정을 따르지 않을 가능성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EU 탈퇴협정에 따라 북아일랜드는 영국 지역 중 예외적으로 EU의 단일시장에 남아 관세 체계 등 규제를 따르게 된다. 북아일랜드 내전 시절 아일랜드와의 통행·통관 절차를 엄격하게 적용하던 ‘하드 보더’ 부활을 피하기 위해서다.

국내시장법은 특정 조항이 국제법과 일치하지 않거나 상충할 경우 국내법을 우선으로 한다는 점을 명확히 밝혔다. 영국 나머지 지역이 북아일랜드를 통해 EU와의 무역 관세를 피할 수 있는 대목이다. 법안은 또 영국과 EU가 새로운 무역협정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른바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 2021년 1월부터 영국 관료에게 상품 이동과 관련해 EU 탈퇴협정의 내용을 수정하거나 불복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국가 보조금과 관련해 영국과 EU 사이에 합의된 의무에 대해서도 무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았다.

영국 정부는 스코틀랜드가 영국의 일원이 된 1707년 연합법을 통해 영국 전역의 교역이 개방된 역사를 언급하며 국내시장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1973년 영국이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하면서 영국 무역법이 EU법으로 대체됐는데, EU로부터 탈퇴했으니 국내 교역 마찰을 방지하기 위해 이 법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알로크 샤르마 영국 기업부 장관은 “(이런 입법이 없다면) 웨일스 양 농장주는 스코틀랜드에 이를 쉽게 팔기 어렵고, 스코틀랜드 위스키 생산업자는 잉글랜드의 보리 접근권을 잃을 수 있다”며 “잉글랜드에서 생산한 자동차는 북아일랜드에서 더 비싸게 팔릴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이 법안은 일자리와 경제성장, 영국 무역을 보호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국내시장법이 국제 조약 이행 의무를 노골적으로 무시한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캐서린 바나드 케임브리지대 법학 교수는 “상당히 놀랍다. EU 탈퇴협정의 일부인 북아일랜드 의정서를 준수하지 않겠다고 명시했다”고 평가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국제법 위반이자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영국 정치권에서도 국제 사회에서 영국의 명성과 신뢰에 손상을 가할 수 있다는 반발이 나왔다. 테리사 메이 전 총리를 포함해 생존해 있는 역대 영국 전직 총리 5명이 반대 의사를 표명한 상태다. 한편 법안은 영국 각 지역에서 채택한 기준이 상호 교역을 약화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를 관리·감독할 새로운 기구(국내시장청)를 설립하도록 했는데, 스코틀랜드·웨일스 등 자치정부는 중앙정부가 국내시장법으로 권력 장악을 진행 중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정유정 기자 utoor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