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양혜규 씨는 “국립현대미술관의 공간 특성을 고려해 작품을 구성했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제공

국립현대미술관서 첫 개인전… 세계적 설치미술가 양혜규

“예술의 속세화 성찰하는 시간
멈추고 쉬게하는 긍정적 면도”

‘현대차 시리즈’로 3년간 준비
은유와 상징 풍성한 서정 담아

“코로나 팬데믹이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일과 출장 여행, 무한 퍼포먼스를 개인에게 요구하는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 조용히 멈추고 쉬게 하는 측면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미술 시장의 속세화 같은 것을 성찰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겠지요. 다만 팬데믹 위기가 우리 속의 열정까지 죽이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관에서 전시회 ‘O₂ & H2O’를 여는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양혜규(49) 씨. 국내외 비엔날레와 대형 국제 미술전으로부터 앞다퉈 초대받는 그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하는 것은 처음이다. 현대자동차가 후원하는 ‘MMCA 현대차 시리즈’의 하나로, 지난 3년간 준비한 4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그는 29일 개막한 전시장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슈테덴슐레 순수미술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데, 지난 1월 한국에 왔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쭉 머물렀다고 했다.

“그 때문에 전시를 더 열심히 준비할 수 있긴 했어요. 선집도 잘 살필 수 있었고요.”

국립현대미술관은 전시에 맞춰 양 씨의 국내 첫 한국어 선집 ‘공기와 물: 양혜규에 관한 글모음 2001-2020’을 펴냈다. 국내외 미술계 필진들의 글 36편을 선정해 연대순으로 엮었다.

이번 전시 작품들은 경계를 넘나드는 서사와 함께 은유와 상징이 풍성한 서정을 담고 있다. 다리미와 냄비 등의 형태를 빌려 생물처럼 만든 조각 ‘소리나는 가물(家物)’은 생물과 무생물을 다 아우르고, 블라인드를 활용한 설치 작품 ‘침묵의 저장고- 클릭된 속심’의 소재는 동양과 서양을 가로지른다. ‘소리나는 동아줄’에 쓰인 방울과 관련, 양 씨는 “우리 전통 무구(巫具)이기도 하지만, 서양에서도 신을 부를 때 쓰기 때문에 보편적”이라고 설명했다.

전시 타이틀은 산소와 물이 자연 상태에서는 물리적 현실이지만, 인간이 고안한 화학기호에서 과학적 상상을 불러일으키며 추상화하는 것을 반영했다. 현수막과 애드벌룬으로 만든 ‘오행비행’은 이런 의도를 헤아리게 한다.

일상 소비재의 나머지를 래커로 나무판에 붙이고 봉인하는 ‘래커 회화’ 연작은 양 씨가 평면 작업을 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벽지 작업 ‘디엠지 비행’은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한 해석과 상상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전시 작품들의 의미를 새기기 이전에 시각적으로 아름다움에 압도되는 것은, 양 씨 작품 특유의 기하학적 미감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그는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공간 특성에 맞게 비례, 크기를 고려해 작품을 구성했다”고 했다. 전시는 내년 2월 28일까지.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