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화백은

김병기 화백은 1916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동갑내기 친구 이중섭은 평양 종로보통학교 짝으로 6년을 함께 어울렸다. 김 화백의 부친 김찬영은 1910년대에 도쿄(東京)미술학교 졸업생으로 한국 서양미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인물이다.

1933년 만 17세에 부친의 길을 따라 일본 유학길에 올라 아방가르드 양화연구소에서 이중섭을 다시 만났다. 여기서 김환기, 문학수와도 사귀며 식민지의 젊은 미술가로서의 고민을 함께했다. 시인 이상의 장례식에 참석할 정도로 당대 예술인들과 폭넓게 교우했다.

평양으로 돌아와 해방을 맞은 김 화백은 조선미술동맹 서기장을 맡았다. 1945년 초가을 어느 날,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 등장한 김일성이 평양의 대표 예술가 열댓 명을 한밤중에 불러 이렇게 당부했다. “나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니, 예술인 여러분께서 나를 선전해주시오.”

1948년 월남한 김 화백은 6·25전쟁 때 결성된 종군화가단 부단장을 맡아 활약했는데, 그는 이때의 고통을 “예술과 전쟁은 상극”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이후 서울대 교수,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등을 지냈고, 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는 한국인 최초로 국제전 심사위원을 맡았다. 그는 상파울루 비엔날레 직후 “이제 작가의 길을 가자”는 결심으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뉴욕에 먼저 정착해 있던 김환기, 김창열 등과 교우하며 20여 년 작품 활동에 몰두했다.

국내와 인연을 끊었던 그는 1986년 윤범모(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평론가의 주선으로 서울 가나아트센터에서 전시회를 하며 다시 국내 화단에 등장했다. 이호재 가나아트센터 회장의 전폭적인 후원으로 파리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해 3년 정도 유럽에 체류했다. 추상과 구상, 동양과 서양의 만남을 담은 작품들이 이 시기에 탄생했다.

1989년 뉴욕으로 돌아갔던 김병기는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원로 작가 초대전을 계기로 영구 귀국했다. 2016년 100세 기념 개인전을 열었던 김 화백은 2017년 101세의 나이로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 됐다.

2019년 4월 10일 103세 생일에 신작 20점으로 개인전을 열어 주변을 놀라게 했다. 그는 “지금 그리고 있는 작품들이 쌓이면 또 전람회를 하고 싶다”고 했다. “또 한다면, 가나(아트센터)에서 할 겁니다. 내가 한국에서 이만큼 기반을 닦으며 살 수 있도록 해 준 은혜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