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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환 경제부 차장

전기 자동차 시장을 이끌고 있는 테슬라가 지난 23일 개최한 ‘Battery Day’는 향후 세계 자동차 시장 판도가 어떻게 변화할지를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기대에 못 미치는 행사이기는 했지만,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한 달 후 오토파일럿의 완전자율주행 버전을 내놓겠다고 장담했다. 3년 뒤에는 가격을 대폭 낮춘 자율 전기 주행차를 출시하겠다면서, 세계를 향해 “굉장한 변화를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미래의 거대한 먹거리 시장이다. 해외시장 조사업체인 IHS마켓에 따르면 전기차 배터리 시장 규모가 올해 38조8000억 원에서 2025년에는 무려 180조 원으로 불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2025년 170조 원으로 예상되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뛰어넘는 규모다. 전기차 배터리가 ‘제2의 반도체’로 불리는 이유다.

당연히 경쟁도 치열하다. 테슬라에 밀린 토요타는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를 2022년 출시하겠다고 했다. 전 세계 배터리 관련 특허의 40%가량을 토요타 등 일본 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점을 보면 토요타 발언이 결코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벤츠나 BMW 등 유럽의 완성차 업체들의 추격도 거세다. 폭스바겐이 2024년부터 배터리 생산을 시작할 계획이고, BMW도 2022년 가동을 목표로 배터리셀을 생산하는 파일럿 공장을 짓겠다고 한다.

특히, 중국 기업의 성장은 두렵기까지 하다. 중국 정부의 보조금 정책 등에 힘입은 CATL은 베이징자동차 등 자국 완성차 업체와 손잡고 차세대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다. 무엇보다 자국의 거대한 시장을 배경으로 갖고 있는 점은 ‘태생부터 금수저’라고 할 만하다.

우리 기업들은 어떤가. 다행히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한국 기업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키웠다. 시장조사업체인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LG화학이 25.1%로, CATL(23.8%)을 누르고 1위에 올랐다.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도 뛰어난 경쟁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내면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LG화학을 제외한 대부분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영업손실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세계 시장을 석권하기 위해서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얘기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두 회사가 특허 문제로 1년 5개월째 다툼을 벌이고 있다. 소송이 소송을 부르면서 양사 간 특허 및 영업기밀 관련 소송이 10여 건에 달하고, 두 회사가 미국 로펌에 지급한 소송 비용만 무려 3000억 원에 육박한다. 소송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번 사태는 두 회사는 물론, 국가 경제에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한·중·일 배터리 삼국지와 우리의 과제’라는 보고서에서 “향후 2∼3년이 배터리 산업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중대 고비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두 회사의 10여 건 소송이 모두 마무리되려면 3∼5년은 더 걸릴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실타래를 푸는 기본 전제는 이번 사태의 잘잘못을 명확히 가리는 것이다. 그에 대한 책임도 분명히 뒤따라야 한다. 다만, 이 중요한 시기에 국내 기업끼리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이 정말 안타까울 뿐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반도체 시장을 호령하고 있듯, 두 회사가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호령하는 ‘글로벌 톱 티어’ 기업이 돼 주기를 국민은 바라고 있다. 세계 시장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