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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관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코로나19 人類에 보내는 경고
한국은 11년 주기로 위기 반복
국내외적 부익부 빈익빈 심화

통신비보다 급한 用處 많은데
정치권은 인기 영합에만 급급
청년에 부담 떠밀면 미래 암담

지금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에 살고 있다. 잠시 스쳐 지나갈 줄 알았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2020년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바꿔 놨다. 많은 자영업자·기업가·노동자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코로나 사태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공동체 유지를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와 집단적 통제가 보완돼야 함을 알려 준다. 잠시 쉬어 가라고도 말한다. 오랫동안 인류는 많은 관행이 문제라는 걸 알면서도 익숙한 습관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당장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 문제들을 끊임없이 누적해 왔다. 환경 파괴, 자원 남용 등 지속 불가능한 정책과 생활 태도를 고집해 왔다. 참다못한 지구가 코로나19를 통해 전 인류(人類)에게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지구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 바이러스고 코로나가 백신인 셈이다.

지난 20여 년간 우리 경제는 11년 주기로 세 번의 위기를 맞았다. 1997년 말 시작된 아시아 외환위기, 2008년 말 시작된 세계 금융위기, 또다시 2019년 말에 등장한 오늘의 코로나 사태가 그것이다. 아시아 외환위기와 세계 금융위기는 금융권의 부실 대출이 문제의 시발점이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20여 년 전 위기가 아시아로 한정됐을 때 미국 재무부와 국제통화기금(IMF)은 어려움에 빠진 아시아 각국에 긴축과 허리띠 조르기를 강요했다. 많은 기업이 망해 나갔고 많은 노동자가 생활 터전을 잃었다. 11년 전 세계 금융위기 때는 어떠했나. 정확히 정반대의 정책이 집행됐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돈 풀기가 이뤄졌다. 이는 ‘양적완화’라는 급조된 경제 용어로 미화됐다. 유사한 문제에 대해 전혀 다른 처방이 내려졌다. 같은 것을 다르게 취급하는 게 차별이다. 이렇게 차별은 자행됐고, 앞선 두 번의 위기는 국제적 불평등에 일조했다.

이번 코로나 위기는 전 세계적 위기라는 점에서 20여 년 전의 아시아 외환위기보다 10여 년 전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닮았다. 각국의 금융 당국은 예외 없이 막대한 돈을 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전에는 세계 금융위기로 풀린 돈을 어떻게 회수할지가 고민거리였다. 코로나 위기가 닥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이제는 얼마나 빨리, 또 많이 돈을 풀지가 현안이 됐다. 세계적 규모의 돈 풀기는 세계 화폐인 달러를 찍어 낼 힘이 있는 미국에 유리하다. 미국은 ‘종잇조각’에 불과한 달러를 찍어 내기만 하면 된다. 세계 금융위기 때나 지금이나 당장 어려움에 빠진 나라들은 미국이 더 많은 달러를 공급하길 원한다. 미국은 달러 발행을 통해 생산보다 소비를 더 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국가다. 미국으로서는 생산을 초과하는 소비를 달러를 찍어 메우면 그만이다. 이것은 평등과 거리가 멀다.

지난 외환위기 때와는 달리 이번엔 우리 정부도 막대한 돈을 풀고 있다. 위기로 인한 어려움은 모든 경제주체에 골고루 퍼지지 않는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하루하루 어려운 삶을 이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위도식하는 자산가는 지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주식과 부동산을 포함한 자산 가격은 정부의 돈 풀기 덕에 많이 올랐다. 기업 중에도 비대면 서비스를 제공해 고용·매출·영업이익·시가총액을 개선한 곳이 상당수 있다. 위기는 국내적으로도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시키는 내적 기제를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코로나 사태를 잘 극복해 나가는 나라로 꼽힌다. 하지만 코로나 재확산의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생명 보호와 경제 활성화는 상충관계(trade-off)에 있다. 정책 당국은 슬기롭게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데,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 전 국민에게 2만 원 통신비를 지원하겠다고 한다. 이런 발상이면 왜 밥값·교통비·옷값은 안 주는가. 통신비보다 급한 용처(用處)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정치권으로서는 인기 영합적 정책을 제안하기보다 어려움에 빠진 중소 상공인, 자영업자, 실업자, 사회적 약자를 위한 맞춤형 정책을 모색해야 한다.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국채 발행을 통해 다음 세대에 어물쩍 부담을 떠넘길 게 아니다. 가뜩이나 어려운 청년들에게 위기의 부담금마저 비대칭적으로 지운다면 누가 아이를 낳고 누가 미래를 책임지겠는가. 세대 간 불평등만이라도 확대시키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