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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굉장히 좋아하셨을 텐데….”

가수 장기하(사진)가 최근 에세이 ‘상관없는 거 아닌가?’(문학동네)를 펴냈다. 노래를 만들면서 가사를 쓴 적은 있어도 떠오르는 생각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한 것은 이번이 처음. 9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 나온 그는 “할아버지가 큰 서점을 운영하셨었는데도 불구하고 손자인 나는 ‘책을 잘 못 읽는다’고 썼으니 괜히 할아버지께 죄송하다. 살아 계셨다면 굉장히 좋아하셨을 것 같다”며 “음반을 낸 지도 오래됐는데 너무 많은 분이 반응해주셨다는 느낌이 들어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문학동네에 따르면 초판 8000부가 사전 예약으로 매진됐다. 그의 할아버지는 지난 2017년 별세한 장하구 씨로, 전 종로서적 회장이다.

‘상관없는 거 아닌가?’는 장기하의 사고와 삶을 엿볼 수 있는 산문이다. 제목 그대로 심각한 것은 전혀 없다. 그저 떠오르는 대로, 손과 마음이 가는 대로 쓴 것처럼 쉽고 일상적이다. 책을 잘 못 읽지만 좋아한다거나, 이나가키 에미코를 접하고 ‘미니멀’한 라이프 스타일을 시도해봤다거나, 가끔은 필요 이상으로 공을 들여 라면을 끓여 먹는다거나 하는 식이다.

하지만 그 일상적인 것들이야말로 장기하를 여느 가수들과 구분 지어온 특징이기도 하다.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이름으로 2008년 ‘싸구려 커피’를 내놓았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눅눅한 비닐 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 붙었다 떨어진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어／ 바퀴벌레 한마리쯤 쓱 지나가도∼”

1980년대와 밀레니엄, 복고와 레트로, 타령과 랩의 어느 중간쯤에 있을 법한 그의 음악은 단숨에 청취자를 사로잡았다. 서울대 사회학과의 엘리트 출신이라는 프리미엄에 ‘소년미’ 넘치는 깔끔한 외모가 인기를 더했다. CD를 직접 ‘구워서’ 앨범을 냈다는 사연도 기가 막혔다. 빅뱅, 소녀시대 등 국내 가요계가 이미 2세대 아이돌로 점령됐던 때에 그는 퍽 ‘유별난’ 존재였다.

장기하도 이런 특별함은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지금은 밴드 활동을 접었지만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장기하와 얼굴들의 전성기인 2008∼2018년의 10년을 꼽고, 그때 나왔던 곡들에 자부심을 보인다. ‘싸구려 커피’ 이후에도 ‘달이 차오른다, 가자’, ‘그렇고 그런 사이’, ‘우리 지금 만나’, ‘풍문으로 들었소’ 리메이크는 그의 대표곡으로 통한다.

그러나 밴드 해산 이후 장기하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슬럼프를 겪은 듯하다. 어려서부터 앓아온 희귀병인 ‘국소성 이긴장증’을 고백하며 싱어송라이터로서 악기를 다룰 수 없는 자신을 자책한다. 그는 군에 입대할 즈음부터 긴장하면 왼손이 굳어지는 병을 앓았다. 그럴 때마다 좋아하는 드럼도, 기타도 칠 수 없었다. 결국 공식석상에서 연주하는 것은 포기해야 했다. 덕분에 보컬과 퍼포먼스에 더 집중할 수 있었으나 ‘홀로서기’에 나선 지금은 “내가 이렇게 할 줄 아는 게 없었나”하는 자괴감에 빠졌다.

그래서 지난해엔 단 한 곡의 노래도 만들지 못하고 쉬었다. 남들 같으면 ‘방황의 시간’일수도 있었지만 일상에 스며드는 게 주특기인 장기하에겐 오히려 ‘축적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책을 통해 솔로 음반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굳히고 방향을 세웠다.

장기하는 “아직 완성한 곡은 없다. 구체적으로 어떤 곡이 나올지는 나도 궁금하다. 지난 1년 반은 나 홀로 노래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를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책을 쓰면서 이제 정리가 됐다”면서 “결국 나의 정체성은 ‘나의 말’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데뷔곡 ‘싸구려 커피’부터 지금까지 해온 것을 앞으로도 고수할 것이다. 말(가사) 이외에 다른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사실 이 책이 출간되기만을 기다렸다. 원래 멀티 태스킹이 안 돼서 책을 쓰면서는 음악을 못하니까 글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며 “하반기에는 음악을 열심히 만들면서 지낼 듯하다. 올초 SNS 계정을 통해 올해 안에 음반 내고 공연하는 게 목표라고 했으나 약속을 못 지키겠다. 올해 몇 달 안 남았더라. 게을리하겠다는 건 아니고 어쨌건 완성이 되는 대로 들려드리겠다”고 덧붙였다.

김인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