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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논설고문

“베토벤이 남긴 32곡의 소나타는 내게 일용할 양식이다. 이전에도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헝가리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시프가 바흐의 평균율로 아침을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흔히 ‘건반 위의 건축가’로 일컬어지며, 연주를 통한 베토벤 작품의 해석에 독보적 위상을 구축한 세계적 피아니스트 김선욱(32)이 한 말이다. “20대 나이에 간절히 원하고 실천한 것이 레퍼토리 확장이었다”는 그는 다른 작곡가들로 연주 대상을 크게 넓혀왔지만, 베토벤 천착(穿鑿)도 변함없다.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로 각인된 것 같아 한편으론 불편하다”고도 한다.

‘기본적으로 연주 구조와 논리의 짜임새가 치밀·튼튼하면서도 순간순간의 본능적·즉흥적 표현이 여유롭고 자유롭다’는 평을 듣는 그는 3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3학년이던 2006년에는 3년마다 열리는 영국 리즈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이면서 아시아인 최초로 우승했다. 현지 언론은 이렇게 극찬했다. ‘스스로 선택한 곡의 완전한 이해를 보여준 것은 김선욱이 유일했다. 강렬하면서 지적이고, 길을 가로질러 가서라도 듣고 싶게 하는 연주였다. 그의 승리는 더 따질 것 없이 완벽한 것이다.’ 2008년 영국 런던 이주 10년 뒤인 2018년 독일 베를린으로 옮겨간 그는 세계 주요 도시 독주회와 국제적인 교향악단의 협연을 지속하면서 ‘젊은 대가(大家)’ 반열에 올랐으나, 여전히 긴장의 끈을 잠시도 놓지 않는다고 한다.

“굉장히 고독하고 힘든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 무대마다 연주자로서의 존속 여부를 검증받아야 한다. 되돌릴 수 없는 압박감을 이겨내며 그 순간에 집중해야 하고, ‘절대 만족’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유일한 원동력은 음악 자체를 그 무엇보다 사랑하고, 연주하는 순간을 즐기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김선욱이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오는 13일 베토벤의 안단테 파보리, 소나타 30번, 31번, 32번 등을 연주하려고 했던 베토벤 탄생 250주년 리사이틀을 코로나19 사태로 일단 연기했다. 그가 선곡에 대해 “청력을 거의 상실한 베토벤이 오로지 감성과 상상력에 의존해 창작한 후기 소나타들로, 베토벤 진심이 더 짙게 표현돼 현실을 초월한 무언가를 느끼게 해준다”던 연주회 일정이 곧 다시 잡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