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최충웅 유작전 제1전시실. ‘전설’과 ‘작품’ 연작들을 드로잉과 함께 만날 수 있다. 김종영미술관 제공

- 조각가 최충웅 1주기 유작전

무분별한 서양미술 추종 배격
전통 바탕으로 현대미술 재창조

사제지간인 조각가 김종영(1915∼1982)과 최충웅(1939∼2019)은 시류와 거리를 두고 자신의 예술세계를 고독히 가꿨다는 점에서 닮았다. 최충웅 1주기 유작전이 스승의 이름을 딴 김종영미술관에서 열리는 것은 퍽 자연스럽다. 그 어울림을 알아보고 유작전을 주선한 사람은 이 미술관 명예관장인 최종태(88) 조각가다. 그는 동문수학하며 젊은 시절부터 눈여겨봤던 최충웅의 예술과 삶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평생을 조각가로서 오직 한길을 흐트러짐 없이 정진했고 쉬지 않고 작업했으면서도 발표하는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밖에서 알지를 못했다. 세상사에 물듦 없이 깨끗하게 살았고 젊은 정신으로 끝날 때까지 곧게 지조를 지켰다. 최충웅의 예술은 순수 추상조각인 것만은 확실하지만 그 안에 무언가가 있다. 순수미(純粹美)만이 아닌 어떤 것, 동양 미술사에서 볼 수 있는 정신의 미라 할까.”

고교와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쳤던 최충웅은 51세에 첫 개인전을 연 이후 5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작품 발표를 지극히 절제했으나,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평생 쉼 없이 정진했다는 것이 유족과 지인들의 증언이다.

이번 유작전 전시장에 들어서면, 동양 정신의 미를 만날 수 있다는 최종태 작가의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서양 미술을 무분별하게 추종하는 것을 배격하고 우리 전통을 바탕으로 현대 미술을 새롭게 창조하고 싶어 했던 최충웅의 예술세계가 오롯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제1전시실의 조각들은 ‘전설’ ‘작품’이라는 제목을 지닌 연작들이다. ‘전설’의 모티브는 우리 전통문화 속의 장승으로, 현대 문명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을 예술로 재창조함으로써 영원히 살게 하고 싶은 작가 정신이 깃들어 있다.

최충웅은 장승에 이어 탑을 작품 세계로 끌어들여 전통 미학을 현대 미술에 융합하는 결과를 빚었다. 이번 유작전 제목이 ‘우리 눈으로 조각하다’인 것은 그 정신을 기려서다. 박춘호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은 “최충웅은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글로컬리제이션(Glocalization)을 앞서 실천한 작가”라고 했다.

‘작품’ 연작은 재료의 물성을 탐구한 것들이다. 최충웅은 스티로폼을 화학 물질로 녹여서 형태를 만든 후 주물로 뜨는 독특한 방식으로 작업했다. 스티로폼이 무슨 조각 재료가 되느냐고 주변에서 회의적 반응을 보였으나, 그는 꾸준히 작업해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2전시실에선 유품을 볼 수 있는데,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는지를 알 수 있다. 3전시실은 ‘여인상’을 비롯해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게 꾸몄다. 조각하기 위해 그린 드로잉 작품들도 있어 매우 흥미롭다.

‘소녀상’의 실제 주인공인 셋째 딸 최은아(음향편집기사) 씨는 “아버지가 생전에 그림도 그린 줄은 몰랐다”며 웃었다. 최 씨에 따르면, 최충웅은 학교와 가정에서 다감하고 성실한 일상을 보냈으나, 작품에서만큼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의 미학을 추구했다.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