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중국에서 가장 쟁의가 많은 작가’ 옌롄커.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준 소설 ‘레닌의 키스’와 함께, 그가 문학과 글쓰기에 대한 총체적인 생각을 밝힌 ‘침묵과 한숨’이 발간됐다. 문학동네 제공

■ 反체제인사 옌롄커 책2권 출간

- 레닌의 키스
우화 통해 재치있게 정부 비판
17년만에 한국어로 나온 禁書

- 침묵과 한숨
販禁 등 시련 술회한 에세이
절망과 소망·문학론 등 담겨

“묵인하다 보면 인민 전체가 기억상실의 늪에 빠지게 된다.”(침묵과 한숨) “한 시대가 그렇게 지나가 버렸다. 하지만 글쓰기는 계속되어야 한다.”(레닌의 키스)

중국의 반체제 작가 옌롄커(閻連科)의 책 두 권이 동시에 출간됐다. 2003년 출간 직후 중국에서 금서(禁書)가 된 소설 ‘레닌의 키스’(문학동네)와 문학과 글쓰기에 대한 철학을 밝힌 에세이집 ‘침묵과 한숨’(글항아리)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배격하는 옌롄커는 모옌(莫言), 위화(余華)와 더불어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다. 해외에선 “가장 폭발력 있는 중국 작가”라는 극찬을 받지만, 중국에선 수차례 금서와 판금조치를 당하는 등 ‘가장 쟁의가 많은 작가’이기도 하다.

17년 만에 한국어판이 나온 ‘레닌의 키스’도 작가의 ‘역설적인 삶’을 닮았다. 책은 라오서문학상을 받고도 십몇 년 동안 중국에서 출판되지 못했는데, 오히려 해외에서 주목을 받았다. 또, 그는 이 ‘문제작’으로 인해 27년간 복무한 군에서 나와야 했으나, 이때부터 세계적인 작가로 더욱 발돋움했다. 이에 대한 소회, 금서·쟁의에 관한 견해, 문학론 등이 담긴 것이 ‘침묵과 한숨’이다. 감격과 반성, 절망과 소망이 교차하는 책은, ‘옌롄커 월드’의 문턱을 낮춰주고, 752쪽에 이르는 방대한 소설(레닌의 키스)과 함께, ‘옌롄커 읽기’의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레닌의 키스’는 탐욕과 부패, 유토피아의 위험성에 대한 역사 우화다. 원제는 ‘서우훠(受活)’. 중국 북방 지역 방언으로, ‘고통 속의 즐거움’을 뜻하며 소설 속 마을 이름이다. 여기선 이런저런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계급 구분 없이, ‘온전한 사람’보다 풍요롭고 고요하게 산다. 그러나 이 평화는 일주일 동안 열설(한여름에 내리는 눈)이 내린 후 변질된다. 폭설로 망가진 마을을 구하겠다며 찾아온 관리 류 현장과 마을의 정신적 지주 마오즈 할머니가 대립하면서부터. 각기 ‘혁명’과 ‘반혁명’을 상징하는 두 힘이 대결하는 가운데, 이야기는 하나둘, 중국 현대사의 아픈 기억들을 소환한다. 대약진운동과 대기근, 문화대혁명, 그리고 1990년대 덩샤오핑(鄧小平)이 경제를 개방한 뒤 중국을 휩쓴 ‘돈벌이 광풍’까지. 소설의 화자가 “시절이 병들었다. 정신이 착란을 일으켰다”고 끊임없이 탄식하는 것처럼, 눈이 내린 여름날 이후, 서우훠에는 좋은 날이 별로 없어 보인다.

옌롄커는 주로 고향 땅에 대한 기억으로 풍자적 소설을 써 왔다. ‘딩씨 마을의 꿈’ ‘풍아송’ 등 대부분 대지로부터의 배신, 이에 대한 비판적 은유로 가득하다. ‘레닌의 키스’ 역시 ‘서우훠’라는 마을을 내세워 작가 자신이 나고 자란 곳, 가난에 찌든 허난(河南)성에 대한 애증, 정권의 정치적 유린에 대한 격렬한 분노를 함께 드러낸다. 또한, 그의 작품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민중이나 약자에 대한 관심,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고민과 탐구의식도 짙게 깔려 있어, 슬프고 참담한 장면에서도 조금은 따뜻한 기운을 느낀다. 옌롄커는 ‘침묵과 한숨’에서 ‘어둠’을 잘 보는 눈이 ‘중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준 ‘선물’이라는 식으로 겸손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건 옌롄커가 작가로서 성찰하고, 문학론을 다시 정립하게 된 계기가 ‘레닌의 키스’에 대한 어떤 저명한 중국 작가의 평 때문이라는 것. 그 작가는 이 소설을 읽고 분노해 책을 찢어버렸고, “앞으로 죽을 때까지 절대로 옌렌커의 책은 읽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나의 글쓰기로 돌아가 어디가 부족한지, 어느 부분이 그렇게 잘못 쓰였는지 열심히 정리하면서 돌이키고 기억해봤다. 그리고 그때부터 항상 자신에게 끝없는 질의를 던지면서 심문하기 시작했다.” 두 책이 나란히 나온 건 그래서 더 의미가 깊다.

‘레닌의 키스’가 쓰여진 건 이미 17년 전 이긴 해도, 재치와 연민, 도발적 풍자로 가득한 옌롄커의 소설 세계를 잘 보여준다. 최근작들에 비하면 다소 헐거운 듯해도 앞서 소개된 대표작들과 그 작법을 비교해도, 또 ‘다르다’. 특히, 형식적인 면이 매우 독특한데, 주석처럼 각 장에 붙어있는 ‘해설’과, 모든 권과 장을 의도적으로 ‘홀수’로만 표기했다는 점이다. 해설은 서우훠 마을의 방언이나 사건의 원인, 배경 등을 풀어주며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방’이 되고, 이를 통해 독자들은 역사와 현실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홀수는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불길함을 상징한다. 소설의 비극적 서사를 암시하는 장치다. 작가는 이번 한국어판 ‘레닌의 키스’ 본문 쪽수도 홀수로 쓰길 원했다고 한다.(기술적인 문제로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어쩌면 이 홀수는 해마다 노벨상 후보에 오르는 대작가이면서도, 언제나 ‘침묵과 한숨’ 속에서 “나만의 ‘독창적인 생각’을 써내지 못했다” “‘미지와 회의, 시험’의 상태에서 뭔가를 찾으면서 바쁜 걸음을 옮기고 있을 뿐”이라고 자조하는 옌롄커의 초조와 불안을 대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