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종호 논설고문

애국가까지 친일 잔재로 매도
‘대한민국 친일파 나라’ 운운
정상적인 국민 능욕하는 행패

反역사 망언에 맞장구치는 與
국가 정체성 뒤엎으려는 저의
언젠가는 단죄될 無道한 짓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고, 약속을 지키며,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는 공정한 대통령’ ‘국민의 서러운 눈물을 닦아 드리는 대통령’ ‘군림·통치하지 않고 대화·소통하는 대통령’ 등 현란한 수사(修辭)를 동원한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 약속 중에서 ‘실현된 것은 한 가지뿐’이라는 비아냥이 나온 지 오래다.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다”면서 “2017년 5월 10일 오늘,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역사가 시작된다”고 했던 말의 결과에 대한 반어법 표현이다. 문 정권이 이젠 그 결정판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눈을 지그시 감고 경청한 김원웅 광복회 회장의 제75주년 광복절 기념사는 그런 저의의 일단이 적나라하다.

헌법 전문(前文)에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했어도, 그는 독립운동을 이끌며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도 지낸 이승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을 직함 없이 이름만 불러 비하하며 “친일파와 결탁했다”고 매도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선택·도입을 주도한 인물이 이 전 대통령이다. 정부 수립을 위해 일부 인사는 친일 행적에도 공직 등용이 현실적으로 불가피했는데, 그는 이 전 대통령의 거의 평생에 걸친 항일 투쟁뿐 아니라,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확고히 한 ‘평화선(이승만 라인) 선포’도 없던 일로 돌렸다. 6·25전쟁 당시 미국의 일본군 참전 요청 계획에 반대한 이 전 대통령이 “그러면 우리의 총구는 일본을 향할 것”이라고 한 일도 마찬가지다.

보수 세력을 싸잡아 친일파로 몬 그는 “대한민국은 친일파의 나라, 친일파를 위한 나라가 됐다”고 했다.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를 두고도 “베를린에서 나치와 함께한 만주국 건국 10주년 축하 연주회 지휘 영상이 있다”며 “민족반역자가 작곡한 노래를 국가로 정한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라고 했다. 애국가를 듣거나 부를 때는 자긍심에 가슴 뭉클하고 숙연해지는 정상적 국민 모두를 능욕하는 언사다. 현행 애국가는 임시정부부터 공식 국가 삼아 불렀고, 임정 요인들이 해방 후 귀국하면서 널리 알리고 각종 국가 의례에서 제창되기 시작했다. 적(敵)이 만든 노래가 국가인 나라도 있다. 그는 무지하거나, 사악(邪惡)하거나, 두 가지 다이거나 할 것이다. 오죽하면 미래통합당 소속의 원희룡 제주지사는 그를 “정신착란적”이라고 했겠는가. 그는 “6·25전쟁의 민족해방적 성격을 완전히 부인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박근혜보다 김정은을 좋아한다는 사람이 개념 있다고 생각한다” 운운한 적도 있다.

사실부터 왜곡하며 이 전 대통령을 ‘역적’으로 몰고, 6·25전쟁 영웅인 고(故) 백선엽 장군을 ‘사형감’이라고까지 한 그의 망언(妄言)에도 문 대통령은 침묵한다. 청와대는 3일 후에 “광복회장으로서 입장과 생각을 밝힌 것이다. 청와대는 무관하고, 사전에 간섭한 적도 없다”고 했다. 잘못된 생각이라고 비판하진 않았다. 문 정부의 첫 국무총리를 지내고, 더불어민주당의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라는 이낙연 의원 등이 “할 말을 한 것”이라거나 “깊이 새기겠다”며 맞장구친 배경일 것이다. “초대 육군참모총장부터 21대까지 한 명도 예외 없이 일제에 빌붙어 독립군을 토벌하던 자”라는 황당한 궤변에, 국방부조차 반박하지 않는 이유도 달리 있기 어렵다. 사실무근에 막말도 곁들여 “친일 반민족 인사 69명이 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다”며 ‘파묘(破墓) 법안’의 9월 국회 통과를 믿는다는 그를 거드는 셈이다.

입법·사법·행정부를 모두 장악하고 신(新)독재의 연장을 노리는 문 정권 차원에서 ‘파묘’ 식(式)을 동원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인 국가 정체성을 뒤엎으며 ‘대한민국의 뿌리를 뽑겠다’는 저의로 비칠 수밖에 없다. 그렇잖다면 일부 친일 행적을 침소봉대해 건국과 구국의 영웅 무덤들을 국립현충원에서 파내기 위한 법안을 발의한 민주당 의원들이 잇달아 공청회 등을 통해 조직적 선동에 열을 올리겠는가. 원칙과 정도(正道)를 걷는 인물이라며 임명하고도 ‘정권 충견(忠犬)’이길 거부하는 최재형 감사원장과 윤석열 검찰총장을 몰아내기 위해 전방위로 겁박하는 행패 또한 그 연장선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무도(無道)한 짓들은 언젠가는 단죄·청소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동서고금의 역사다. 문 정권은 그 ‘진실의 순간’이 온다는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