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5일 서울 서교동 북티크에서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가 20인의 문인을 인터뷰한 ‘스무 해의 폴짝’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마음산책 제공

- ‘스무 해의 폴짝’ 출간한 마음산책 정은숙 대표

소설가·시인부터 평론가까지
7개월간 찾아다니며 대화 담아

열정 가득한 작가들 만나니
“더 좋은 책 만들자” 가슴뛰어

“신발받고 질주·분홍신 요구
작가들 ‘사적인 면’ 재밌었죠”

어떤 일을 꾸준히 하고, 그것의 스무 해를 맞는 기분은 어떨까. 그게 누구든, 무슨 일이든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념할 것이다. 올해로 창립 20돌을 맞이한 마음산책 출판사 정은숙 대표는 소설가, 시인, 평론가, 번역가 등 20명을 만났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방식을 택했다. 지난 20년간 출판시장과 독자의 변화를 체감하며 느낀 책, 글쓰기, 독자의 의미를 공유했다. 출판사의 스무 번째 생일 잔치로, 이보다 더 ‘문학적’인 방식이 있을까. 소설가 이승우, 김연수, 하성란, 김금희와 평론가 신형철, 이해인 수녀 등 정 대표가 만난 20명의 문인은 2000년 이후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도 늘 ‘문학 하는 기쁨과 의미’를 찾으려 한, 한국문학의 소중한 존재들이다. 그 대화의 풍경, 그리고 아름다운 ‘말’들을 오롯이 담아 ‘스무 해의 폴짝’을 펴낸 정 대표를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북티크에서 만났다.

“문인들을 만나면서 ‘희망’을 가득 발견했어요. 문학 환경이 급격히 달라졌지만, 누구 하나 회의감에 빠져 있지 않았거든요. 생산자인 작가가 더 좋은 글을 쓰고 싶다, 그리고 할 수 있다고 하니, 편집자로서 안도감이 들었어요. 그럼 난 ‘독자 공부’를 더 열심히 하고, 책을 더 잘 만들어야겠구나 하는 마음…. 또다시 가슴이 막 뛰더라고요.”

이미지 크게보기 정이현 작가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정 대표가 선물한 운동화를 신어보고 있다.

출판계에 입문한 지 35년, 출판사 대표로는 20년이다. 어느 해, 어느 날 뜻깊지 않은 때가 없었지만, 문인들과 만났던 지난 7개월은 정말로 특별했다. 작업실이나 학교 등 그들의 생업 공간을 직접 방문했고, 2~3시간 이야기를 나누면 정리해야 할 녹취 기록이 원고지로 100장가량 나왔다. “각 세대의 작가들에게는 그들만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가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독자에게 주고 싶습니다.”(김연수), “오는 말이 안 고와도 가는 말을 곱게 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갖지 않으면 우리는 후회하게 돼요.”(이해인), “작가들이 자기만의 고유한 문학세계를 마음껏 드러낼 수 있고 또 그것이 소통되는 문학적 환경이 유지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이승우) 정 대표는 “집에 돌아와 녹취를 풀고, 대화를 복기하면 다시 눈과 마음이 뜨거워졌다”며 “지난 7개월은 온전히 그 20명과 함께 산 느낌”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마음산책은 2000년대 초반, ‘주변부 문학’으로 여겨지던 산문과 짧은 소설만을 출간하며 새로운 흐름을 주도했다. 당시엔 산문을 ‘잡문’이라 낮춰 부르는 일이 흔했다. 정 대표는 참신한 기획에 집중했고, 꼼꼼한 편집과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물성이 예쁜 책’을 만드는 데에도 힘썼다. 이제 그것은 마음산책의 브랜드이자 2010년대 이후 출판시장의 보편적인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이번 책은 그러한 마음산책의 지향성과 내공이 고스란히 담겼다고 볼 수 있다. 표지부터 ‘폴짝’ 뛰는 귀여운 캐릭터가 눈길을 끄는 건 물론이고, 내용적으로는 깊이 있으면서도 가독성이 높아 마니아층을 보유하고 있는 인터뷰집 ‘말’ 시리즈를 잇고, 또 완성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처음 10년간은 산문과 짧은 소설을 장르로 특화시키느라 좀 힘들었어요. 그래도 어느 순간 ‘새로운 독자’가 보이더라고요. 출판사의 역할이 더 확장되고, 중요해졌어요. 책이 사양산업이라는 말, 정말 ‘사양’하고 싶어요.”

애초 정 대표는 20명의 문인을 만나며 ‘문학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거대한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했다. 대신, 지금 이 순간의 고민과 몰두하고 있는 작업 등, 앞으로 더 ‘폴짝’ 뛰어오를 미래를 그려보자고 했다. 그래서 책에는 20명 문인의 얼굴과 함께, 흥미로운 사진이 스무 장 더 있다. 바로, 각각의 인터뷰이에게 정 대표가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골라 선물한 운동화 사진이다. 제대로 ‘폴짝’하기 위해선, 운동화 끈을 단단히 조여 매야 하니까. 20명의 취향과 반응은 전부 달랐다고 한다. 무뚝뚝하게 신발을 받아드는 이, 반드시 분홍색을 원했던 이, 받자마자 신어보고 달려보는 이, “뒤축이 선미(船尾) 같다”고 묘사한 이 등. “운동화를 통해 그들의 ‘사적인 면’을 들여다보는 것도 즐거움이었다”고 정 대표는 귀띔했다.

마음산책이 지나온 스무 해는, 앞으로의 스무 해를 위한 ‘도약대’이고, 이를 기념한 책은 ‘돛대’가 되어 줄 것이다. 정 대표는 그 뜀박질, 혹은 항해의 주인공이 자신만이 아님을 안다. 문인들뿐만 아니라, 늘 ‘즐거운 수고’에 인생을 내어주고 있는 직원들도 ‘함께’다. ‘스무 해’의 로고를 박은 운동화도 맞췄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마음산책 에디션’. “‘홀로 살지 않는다’는 걸 새삼 더 느꼈어요. 신형철 평론가가 이번 책에 대해 ‘절제하지 마시고 자랑스러워하세요’라고 했는데. 책 대신, 우리 식구들 자랑 좀 하고 싶네요, 하하.”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