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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前 통일연구원장 前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지난 3일 공개된 유엔 보고서는 ‘북한의 지속적인 핵무기 개발’을 재확인시켜 주면서 ‘핵탄두 소형화 성공’을 경고했다. 대북 제재를 감시하는 전문가들이 작성해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위원회에 제출한 이 보고서는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 생산, 실험용 경수로 건설, 상대국 방어망을 돌파하는 다탄두 시스템 개발 등을 지속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3개월 안에 핵실험 인프라를 재구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북한 핵을 주시해온 전문가들에게는 자료실에 쌓여 있던 옛날 신문을 꺼내 기사 한 줄을 읽은 느낌이었을 뿐이다.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경고해온 ‘엄중한 소식’이긴 하지만 ‘놀라운 소식’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작 놀라운 것은, 북핵(北核) 위협에 일방적으로 노출된 대한민국의 무신경증(症)이었다.

북한이 쉽사리 핵을 포기할 리 없다는 것은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며, 2018년 평화 공세의 주목적도 대미 협상을 통해 핵 보유를 인정받는 데 한국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이후 1년 반 동안 현란한 정상외교를 펼치면서도 북한은 핵·미사일 공장들을 가동했고, 미국 정보기관들은 북핵을 ‘60개 이상’으로 추정했다. 스톡홀름평화연구소(SIPRI)가 2020년도 연감을 통해 내놓은 보수적인 추정치도 ‘30∼40개’였다. 북한은 근년 동안 핵 탑재를 염두에 두고 각종 미사일을 미친 듯이 쏴댔다. 이런데도 “북핵 소형화의 증거가 있느냐”고 반문한다면 제정신이 아닌 사람일 것이다.

미국과 핵전쟁을 할 것도 아니면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하고 주한미군의 미사일방어(MD)망을 돌파할 핵병기 개발에 매달리는 것도 핵보유 기정사실화와 한·미 동맹 무력화가 대남전략의 요체인 북한에는 승부를 걸어야 마땅한 일이다. 핵 방어를 돌파하는 전통적인 수단은 다탄두독립비행체(MIRV)와 잠수함발사미사일(SLBM, SLCM)이고, 변칙기동 탄도미사일과 극초음속비행체(HCM, HGV)는 최근에 등장한 새로운 수단이다. SLBM에 열을 올리면서 변칙기동 이스칸데르까지 시험한 북한이라면 다탄두화를 욕심내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중·러가 미국보다 반발 앞서 개발 중인 극초음속무기 기술이 조만간 북으로 넘어갈 가능성도 다분하다.

그런데도 “우리의 종말단계 저고도 방어(PAC-2)나 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로 충분하지 않다는 증거가 있느냐”고 반문한다면, 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풍계리 핵실험장도 그렇다. 2018년 5월 북한이 보여준 것이 입구를 파괴하는 장면뿐이라면, 원하기만 하면 단기간 내에 핵실험을 재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게 당연하다.

단 한 발로 도시 하나를 절멸시키는 종말 무기인 핵무기가 북한에는 있고 한국에는 없다. 이 비대칭 상태에서는 적화통일은 있을 수 있어도 자유민주 통일은 없다. 노예 상태의 ‘저질(低質) 평화’는 가능해도 상호 존중의 ‘양질(良質) 평화’는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북한이 쉽사리 핵을 사용하지 못할 것이니 걱정하지 말자”고 한다면 국가관리자로서는 무자격이다. 대한민국을 파괴할 수 있는 북한의 일방적인 능력 그 자체만으로도 그들의 갑(甲)질에 끌려다니는 신세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동맹의 힘을 이용하거나 독자적인 핵무장을 통해 북핵 위협을 상쇄하고 강군 육성과 안보의식 고취를 통해 강건한 안보를 유지하는 것은 대북정책 기조와 무관하게 늘 해야 하는 일이다.